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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충북 보은 복천암선원:토굴속 성철·청담 自我를 닦던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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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월드컵 축구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둥근 공 하나를 매개로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하나 됨을 체험했다. 그것의 형태는 지난날 우리를 진저리치게 했던 붉은 색깔로 드러났다. 선(禪)도 갈등과 고정관념, 마음의 상처 등을 녹이고 너와 남이란 구별 없이 하나 됨을 깨닫게 한다.

다만, 선이란 보다 본질적인 행위여서 우주와 하나 되는 직접체험이다. 우주와 하나 된다니까 거창하게 생각하여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해와 바람과 흙과 물, 나무와 풀들과 우리 자신이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나그네가 지금 찾아온 곳은 충북 보은 속리산 복천암선원(福泉庵禪院)이다. 선원장 월성(月性)스님과는 구면이다. 그러나 집착을 놓고 사는 수행자들에게 구면이란 프리미엄은 없다. 정(情)이라는 것도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일테지. 며칠 전이다. 전화를 받는 스님은 시큰둥했다.

"나 얘기할줄 몰라요."

"잠깐이면 됩니다."

"와도 아예 얘기를 안 할 수도 있고, 몇 시간이고 길게 할 수도 있겠지."

오라는 것도 아니고 오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다. 이를테면 인연 따라 만나고 헤어진다는 수행자들의 무심한 문법이다. 그러나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중국 선가에서 유래한 말도 있고 보면 그리 섭섭해 할 일은 못된다.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진정(眞靜)스님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때는 공민왕이, 조선 때는 세조가 자주 찾았던 암자라고 전해진다. 지금도 다녀간 왕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공민왕의 무량수(無量壽)라는 글씨가 그것이며, 세조와 세종의 일화들이 구전되고 있다.

세종은 암자의 신미(信眉) 대사를 불러들여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 체계를 설명케 했다고 하며, 암자의 사적비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세종은 신미대사의 공로를 인정하여 한글이 반포된 후 암자에 미타삼존상을 조성 봉안케 하였으며, 이어 문종은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지닌 복천암이 선방으로 이용된 것은 해방 전이 아닐까 싶다. 청담과 성철이 찾아와 수행을 하면서 선방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음이다. 두 수행자는 1942년 정혜사에서 만났는데, 겨울밤의 잔별들을 우러르며 이렇게 맹세했던 것이다.

"우리 조그만 토굴로 들어가서 도토리 밥으로 주린 배를 면하더라도 조사 어록을 스승 삼아 공부하세."

조그만 토굴이란 복천암 선방을 가리켰다.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청담이 먼저 와 있었고, 성철이 몇 개월 뒤에 합류했던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일러 도반(道伴)이라 한다. 진리를 향해 함께 가는 친구라는 뜻이다.

나그네는 서울 도선사에 계시는 도우 노스님에게 그때의 상황을 증언들은 적이 있다. 굶주림도 그들의 수행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1943년 복천암에는 청담스님, 성철스님, 돌아가신 영천스님, 나와 또 한 스님 이렇게 다섯이 살았지요. 원주스님이 밥이라고 주는데 어찌나 보잘것없었던지 그걸 먹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생식을 하게 됐지요. 큰절에서 쌀 두 홉을 타다가 갈아서 들깨를 넣고 하루에 물 세 그릇씩 먹으면서 정진했어요. 따로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래도 불평 없이 하루 종일 무섭게 참선을 했지요."

더구나 그 무렵은 일제의 공출이 심해 속세의 사람들도 모두가 쫄쫄 굶던 때였으므로 중생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수행자로서 양식타령을 할 수 없었다.

선방에 이런 수행자들의 아름다운 우정과 수행의지가 깃들여 있기에 나그네 마음은 흐뭇하고 때로는 긴장하기도 한다.

나그네는 월성스님을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처음 뵈었는데, 그때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두 스님이 암자 마루까지 들이치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법거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야 그때 사연을 스님이 주는 녹차 한 잔을 마시며 듣는다.

"상무주암 스님하고 복천암에서 함께 살았어요. 서로 임무교대하기로 하고 그 스님이 먼저 지리산 상무주암으로 떠났는데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로 쫓아갔지요."

선객이란 그런 것인가. 스님의 이력은 큰절에서 작은 절로 도망치는 사연으로 일관하고 있다. 큰절 주지 2년 맡은 것이 일생일대의 수치라고 말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선의 무엇이 매력이길래 그것과 평생 동안 연애하듯 살아가는 것일까.

"마음에 낀 때를 벗기는 작업이 선입니다. 선은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번뇌 망상을 제거하고 때가 묻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입니다. 부처의 마음은 오면 비춰주고 가면 흔적을 지우는 거울 같고, 중생의 마음은 창호지 같아 먹물이 떨어진 것처럼 지워지지 않지요. 참선은 맑고 밝은 거울이 되려고 하는 수행입니다."

나그네는 이쯤에서 참을 수 없는 물음 하나를 던진다.

"스님, 속리산에 거울 같은 마음을 지닌 분이 계십니까."

"나는 몰라. 오해는 마시오. 불교는 왜 산중에만 숨어 있느냐고. 하지만 완성이 안된 수행자가 저잣거리로 나가봐요. 그건 병신이 병신 만드는 꼴이지."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더 정진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선방이란 막연히 오도(悟道)를 기다리는 간이역이 아니라 미완의 수행자들이 자신을 제련하는 용광로 같은 장소다.

(ohmy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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