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품들 꼭 만져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작품을 꼭 만져보고, 열어보고, 앉아보고 즐겨주세요'. 안양시 석수 2동 '스톤 앤드 워터'(관장 박찬응) 전시장 앞에서 관람객들은 낯선 안내문에 놀란다.'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란 경고문 대신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까지 마실 수 있는 신나는 실내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독립큐레이터 류병학씨가 기획한 '리빙 퍼니처'전은 엄숙한 백색 공간으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기존 전시 관행을 뒤집었다. 제목 그대로 미술을 '살아 있는' 생활용품들 속에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장은 배우 설수진씨의 방을 모델로 한 21평짜리 원룸이다. 이 다용도 방을 작가 2백70명이 각양각색 작품으로 빼곡히 채웠다. 화가 김택상씨와 배준성씨의 그림이 액자 속에 숨어 있고, 이동기씨가 즐겨 그리는 '아토마우스'는 티셔츠로 변해 옷걸이에 걸렸다.

비디오 아티스트 김기라씨는 TV에 작품을 띄워놓는가 하면, 김미진씨는 망가진 고가구를 고친 '보수 화장대'를 선보였다. 조각가 정광호씨는 철사로 만든 항아리를 내놓았고, 디자이너 이종호씨는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휴식처로 변한 양변기를 설치했다. 옷장을 열면 조은경씨가 바느질한 종이 속옷이 누워 있으니 친구네 집들이에라도 온 기분이다.

출품작들을 꿰는 한마디는 '건강과 행복'이다. 류병학씨는 작가들에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현대미술을 버리고 사람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작품을 부탁했다.

류씨는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을 미술에 적용해 보니, 미술품을 잘 쓰는 것이야말로 보약이더라"고 말했다. 사람의 장기를 오방색에 대입해 보면 위와 위장은 청색, 폐와 대장은 적색, 심장은 황색, 간장은 백색, 신장은 흑색이 도움이 된다. 또 상생관계로 풀면 위에 문제가 있을 때 검정색 그림이 좋고, 빈혈이 왔으면 백색과 황색 도자기가 적절하다. 예를 들어 소화가 잘 안되는 사람은 검정 팬티, 신장염에 걸렸거나 방광이 약한 이는 백색과 검정 속옷,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는 빨강 속옷으로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윤선씨가 디자인한 '월드컵 기념·한국전쟁 기념' 속옷은 그 모양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건강까지 챙겨준다니 더 좋다. 5백원짜리 '복돼지' 같은 박리다매 도예품과 30만~40만원대 건강증진 그림이 많이 팔려나가는 이 전시는 8월 16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2천원. 031-472-2886.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