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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제 issue &

좋은 금융회사, 나쁜 금융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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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의 나쁜 금융회사들은 2005년과 2006년 원리금 상환능력을 묻지 않고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벽돌 찍듯이 찍어냈다. 2007년 이후 집값이 하락하면서 원리금 상환을 하지 못한 수백만 명의 차입자들은 집을 차압당했다. 한국의 나쁜 금융회사들은 2000년과 2001년 신용카드를 소득 확인 없이 남발했다. 카드 돌려막기로 현금서비스와 카드대출을 물 쓰듯이 사용한 수백만 명의 카드소지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묻지마 식으로 대출을 퍼주던 금융회사들은 부실대출의 발생으로 금융회사 자신의 건전성이 나빠지면 마구잡이로 대출을 회수한다. 이는 신용경색을 일으켜 경기를 침체시킨다.

최근에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이 금융 현안으로 떠올랐다. 대출 포트폴리오의 30% 이상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채울 만큼 PF대출에 집중했던 저축은행들이 PF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동반 부실화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많은 금융회사가 부동산대출에 전력 질주했다. 금융회사들이 부동산대출을 큰 폭으로 늘리면서 부동산가격도 같이 올라갔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부동산 버블이 꺼지자 부동산대출이 부실화되면서 부동산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회사의 건전성도 악화됐다. 총부채상환비율(DTI)보다는 담보인정비율(LTV)을 대출 승인기준으로 집행된 부동산대출은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서 부실화되었다.

좋은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자금융통뿐 아니라 고객의 사업이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함께 제공한다.

“씨티은행의 경쟁력은 기업 고객이 존경하는 산업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 데 있다. 일례로 보잉이 투자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씨티은행 항공전문가에 자문을 한다.” 1980년대 후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씨티은행의 존 리드 행장이 말한 내용이다. 글로벌 자산운용회사인 미국의 캐피털그룹은 정보생산을 핵심 역량으로 차별화해 성공했다. 캐피털그룹은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호형호제하는 기업분석가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또 CEO를 역임한 사람이 다시 기업분석가로 일하기도 한다. 많은 연구비 예산과 함께 연구인력의 중용을 통해 캐피털그룹은 뛰어난 기업분석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씨티은행과 캐피털그룹처럼 고객이 존경하는 좋은 금융인을 많이 보유한 금융회사가 국내에도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금융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의 탄생이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의 배경엔 서울대 교수보다 많은 수의 박사급 연구인력을 보유하면서, 이들을 경영에도 참여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은 전자산업 못지않게 정보생산이 중요한 산업이다. 산업전문가와 통계분석가를 경영에 참여시키면서 고객 연구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금융솔루션을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좋은 금융회사가 된다. 좋은 금융회사가 되는 것이 글로벌 금융회사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동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