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造林地 나무대신 탄소배출권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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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솔그룹은 1993년 가구용 원목을 확보하기 위해 호주 서부 콜리 지역에 2만㏊(1㏊=3천평) 규모의 조림지(造林地)를 가꾸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뉴질랜드의 북섬 이스트코스트와 기스본 지역에 추가로 1만㏊의 조림지를 꾸몄다. 하지만 한솔은 이 조림지가 완성되는 내년부터 계획을 변경할 예정이다. 가구용 원목 확보 차원이 아니라 '탄소배출권'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조림지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이 적용되는 2008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한됨에 따라 선진국 기업들이 속속 뛰어드는 '탄소배출권' 시장에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탄소배출권'이란 지구온난화 및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조림지 등에서 산소를 내뿜는 만큼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 97년 12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3차 총회에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 38개국이 '교토의정서'를 채택하면서 등장했다. 선진국들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키로 목표를 설정했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물어야 할 엄청난 환경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를 시작했다.

◇활발해지는 거래=일본·영국 등에서는 이미 탄소배출권 거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탄소 배출이 많은 자동차·전력 회사 등이 적극적으로 대규모 조림지를 만들거나 탄소배출권을 사들이고 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호주 서부지역에 1천1백㏊ 규모의 조림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코스모 석유는 호주 조림업체인 APT사에 6천만엔(약 6억원)을 주고 APT가 키운 나무가 흡수한 양만큼의 이산화탄소를 일본 공장에서 배출할 권리를 샀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BP도 호주 남동부 지역에서 조림을 하고 있다.영국의 탄소배출권 중개회사인 'co2e.com'의 니콜라 스틴 부사장은 "탄소배출권 시세는 4월까지만 해도 t(이산화탄소)당 3파운드(5천5백원)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t당 7파운드(1만3천원)로 뛰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교토의정서의 타결에 관계없이 2005년부터 회원국들의 탄소배출권 거래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교토의정서를 반대하는 미국의 시카고 선물시장에서도 거래 규모만 연간 35억달러에 달하는 탄소배출권 거래를 시작했다.

◇탄소배출권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이처럼 배출권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조림사업을 펼친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 만들기에 나섰다. 한솔은 호주와 뉴질랜드의 조림지를 탄소배출권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 이미 특별팀을 구성했다. 한솔의 송병희 담당은 "한솔이 조성한 3만㏊의 조림지는 12년간 약 2천억원의 시장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솔은 현지법인을 통한 시장정보 수집, 배출권거래 규정 수립 등 대책마련을 통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탄소배출권 판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김용건 박사는 "한국은 이번 1차 규제대상에는 안들어갔지만 2013년부터 5년간 계속될 2차 기간에 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부터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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