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운전석을 전투기 조종석처럼 앞유리로 계기판 보며 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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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F-16 전투기 조종사는 계기판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앞 유리 바깥 5m 정도의 허공에 계기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목표물을 조준할 때도 허공에 나타나는 '+'표시에 맞추면 자동 조준된다.

시속 1천㎞ 정도로 내달리는 전투기 안에서 계기판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적의 전투기에 꼬리가 잡힐 수 있다. 그러나 허공에 계기판이나 조준표시가 나타나면 그럴 염려가 없다. 앞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항공기·자동차의 계기판과 각종 정보가 앞유리나 허공에 나타나 안전운행을 하도록 도와주는 전방주시장치(Head-up Display System)의 개발이 확산되고 있다. 계기판을 보느라 속도를 늦추지 않아도 되고, 특히 야간에 안전운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도 미래형 자동차의 필수품이 될 것으로 보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 손정영 박사는 "전방주시장치를 설치하면 앞쪽의 물체와 계기판·운행정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며 "고속으로 달리는 항공기나 미래의 자동차 운행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인 GM은 적외선 장치를 이용한 전방주시장치를 컨셉트 모델인 에보크에 장착해 선보였다. 낮에는 전체 앞유리창과 구분이 잘 안되지만 밤에는 헤드라이트를 켜도 잘 보이지 않는 차 앞쪽 사람이나 동물이 책 크기의 특수 유리창에 나타난다. 적외선 카메라로 차 앞쪽 수십m의 물체를 찍은 뒤 앞 유리창에 투사해 보여주는 것이다.

앞 유리에 각종 정보를 나타내는 기술은 홀로그램을 이용한다. 홀로그램은 같은 종류의 레이저이면서도 두 갈래로 따로 쏘아 영상을 만든다.하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물체에 비춰 반사돼 나오도록 하고, 또 한 갈래의 레이저는 반사돼 나온 레이저와 부닥치게 한다. 그러면 간섭 무늬가 생기는데 이를 이용하면 홀로그램이라는 입체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영상을 빛을 반사하면서도 투명한 특수 유리에 투사한다. 조종사나 운전자는 그 유리에서 반사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허공에 스크린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영상이 맺히는 초점을 조정함으로써 가능하다.

렌즈의 경우 초점이 맺히는 거리에 어떤 영상을 투사하면 마치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 상이 맺히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이 생긴다.

항공기용은 비교적 쉽다. 하늘이나 구름 등만 보여 특정 색깔이 보이지 않도록 해도 조종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계기판을 허공에 나타내는 특수유리는 녹색만 반사하고 나머지 색은 모두 통과하도록 한 것이다. 조종사는 이 특수유리로는 외부의 녹색을 느낄 수 없다. 계기판의 정보는 녹색레이저로 이 유리에 쏘며, 그 색만 반사돼 조종사의 눈에 녹색으로 계기판이 허공에 보인다.

그러나 자동차용은 외부의 녹색을 보지 못하도록 하면 사고의 위험이 커 아직 실용화되지 않고 있다. 캐딜락처럼 야간에만 적외선을 이용한 전방주시장치가 개발돼 있을 뿐이다.

계기판 정보는 승용차의 경우 앞 범퍼 위 허공에 영상이 맺히는 것처럼 느껴야 시야가 짧아지지 않는다.

손정영 박사는 "전방주시장치는 화면의 크기를 책 정도로 밖에 만들지 못하고, 완전한 컬러를 반사하면서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며 "그 기술이 개발되면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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