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신탁 대출 못한다 내년부터 빌려준 자금도 단계적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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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년부터 은행 신탁계정의 신규 대출이 중단될 전망이다. 단 기존 신탁대출은 갑자기 중단할 수 없으므로 경과 규정을 두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신탁대출 잔고는 지난달 15일 현재 4조5천억원이다.

앞으로 은행들은 은행 돈인 고유계정(은행계정)에서만 대출을 하고, 신탁 상품에 들어온 고객 돈으로는 유가증권 등에 투자하라는 취지다.

이렇게 되면 주식·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 증권시장에는 호재가 되는 반면 현재 신탁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점차 다른 대출로 바꿔야 한다.

재정경제부는 1일 이런 내용을 포함해 각 금융기관의 신탁상품 관련 법률을 합친 자산운용통합법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이 통과되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다른 금융기관의 신탁상품은 대부분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되고 있지만 은행 신탁자금은 대출에도 사용되고 있다"며 "은행 신탁도 본연의 성격에 맞게 유가증권 투자에 집중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은 대출보다 회사채·주식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개인은 신탁대출 대신 은행 일반대출이나 상호저축은행 등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며 "시중자금 사정이 좋은 데다 신탁대출 잔고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여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자산운용통합법을 제정하면서 금융기관별로 제각각인 신탁에 대한 자산운용 규정·감독체계 등을 통일하기로 했다. 특히 동일종목 투자한도 등 자산운용 관련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그동안에는 고객 돈을 모아 유가증권 등에 투자한 뒤 실적대로 돌려주는 신탁상품(은행 신탁·투신사 수익증권·뮤추얼 펀드·보험사 변액보험 등)에 대한 규정이 금융권별로 들쭉날쭉해 문제가 있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각 금융기관의 신탁 상품이 똑같은 규제를 받게 되면 경쟁이 촉진돼 수익률이 높아지고 고객들도 상품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은행 신탁의 경우 고유계정과 분명하게 구분하는 장치를 마련해 은행의 부실이 고객 손실로 전가되거나 반대로 은행이 고객 손실을 메워주는 것을 막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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