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꽃놀이의 뒤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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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홍콩 빅토리아만에선 1일 저녁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식민지 홍콩'이 '차이니스 홍콩'으로 배를 갈아탄 지 5주년이 되는 날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3백50만 홍콩달러(약 5억6천만원)를 들여 3만발의 폭죽을 쏘아올렸다.

홍콩인들은 불황과 감원·실업·파산 등의 우울한 단어들을 잠시 잊고 불꽃의 마술에 취해 쉴새없이 탄성을 질렀다.

이에 앞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과 첸치천(錢其琛)부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제2기 둥젠화(董建華)내각 출범식엔 홍콩의 내로라하는 정·관·재계 인사 2천여명이 참석했다.

홍콩 섬의 골든 보히니아(紫荊)광장에선 홍콩의 '실세집단' 8백여명이 모여 국기게양식을 했다. 축제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청소년 음악회·축구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날 몇몇 행사장에서 보여준 홍콩 정부의 태도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우선 내·외신 취재진 1백여명은 국기게양식이 진행된 컨벤션 센터 현장에서 50여m나 떨어진 '구석'에 배치됐다.

기자석을 벗어나려고 하면 1m 간격으로 촘촘하게 배치된 경찰·보안요원이 완강히 제지하고 나섰다. 경비요원들은 기자석까지 들어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취재석과 방청석 사이엔 바리케이드를 쳤다. 홍콩 경찰은 지난 5월 '기자석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기자들에게 수갑을 채운 일도 있다. 옆자리에 앉았던 한 일본 신문 특파원은 "참 재미있는 모습이네요"라며 연신 웃음을 흘렸다.

행사장 바깥은 더욱 소란스러웠다. 홍콩 경찰이 컨벤션센터 주변에서 하루종일 시민들과 승강이를 벌였기 때문이다. 경찰이 행사장 주변뿐만 아니라 그 외곽지역의 통행까지 과도하게 통제하자 시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뿐만 아니다.홍콩 이민국은 최근 파룬궁(法輪功)수련생으로 의심받는 외국인 1백여명의 입국을 불허했다. 10여개 단체가 계획했던 반정부 집회도 모조리 불허됐다. '국제도시,자유도시 홍콩'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치다.

董행정장관은 취임사에서 "'홍콩정신'을 살려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행사장을 벗어나면 '홍콩정신'이 가차없이 짓밟히는 현실에서 그의 말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까.

홍콩대학과 시민단체의 합동 여론조사 결과 "董이 재선돼 불만"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80%를 넘는다. '경제' 하나로 일어선 홍콩이 정치에 짓눌려 자꾸 시들어가는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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