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97세 문호 巴金 안락사 논쟁 촉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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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래 사는 것도 형벌이란다."

중국 현대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97세의 바진(巴金·본명 李堯棠·사진)이 가족들에게 안락사를 간청하면서 중얼거린 말이다.

바진은 현재 파킨슨병에다 만성기관지염·고혈압 등에 시달리며 수시로 의식을 잃곤 한다. 식사와 약은 코로 뚫은 관(管)을 통해 간신히 해결한다. 상하이(上海) 화둥(華東)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주위에서 "바라오(巴老·巴선생님), 손 좀 들어보세요"라고 소리치면 간신히 눈을 뜨고 손을 조금 들 정도다.

바진으로 인해 중국 대륙에선 안락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몇차례나 "제발 생을 마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가족은 물론 작가협회조차 고개를 젓고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보는 중국인들은 실용주의 쪽에 선다. 베이징(北京) 시민의 64%는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할 땐 죽음을 택하겠다"고 답변했다. 대도시에선 은밀히 안락사를 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부 전인대(全人大·국회에 해당) 대표들은 안락사법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바진이 중국의 국보급 인사라는 데 있다. 설사 가족이 동의한다 해도 중국 지도부의 승인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그는 1983년부터 전국 정치협상회의(政協) 부주석과 작가협회 주석을 맡고 있다.

1904년 11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와 20년대부터 중국의 신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49년 공산정권 수립 이전엔 무정부주의 성향이 담긴 『가(家)』『멸망』『춘(春)』 등 20여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문화혁명 기간 중 붓을 꺾었다가 70년대 들어 8년에 걸쳐 쓴 『수상록(隨想錄)』을 내놓았다. "힘과 정(情)과 열기가 종이를 뚫었다"고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가』는 중국 언론이 뽑은 20세기 1백대 예술작품에 들어간다.

중국 문단에선 그를 루쉰(魯迅)·궈모뤄(郭沫若)·마오둔(茅盾)·라오서(老舍)·차오위(曹)와 함께 '현대문학의 6대 거장(大師)'으로 손꼽는다.

중국인 작가로는 최초로 2년 전 가오싱젠(高行健)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작가협회에선 "상을 받을 사람은 바진"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는 문화혁명 때 라오서 등 많은 동료들이 부르주아로 몰려 죽임당했던 통한(痛恨)을 '문혁 박물관'을 세워 풀었다. "후세에 경계를 남긴다"며 정부 지원도 일절 거절했다.

바진의 뜻과 달리 주치의인 추이스전(崔世貞)은 "巴선생님의 1백세 생신에 1백송이의 장미꽃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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