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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컴의 조악한 사기 행각<워싱턴 포스트 6월 27일자 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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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의 캐나나스키스로 향하던 25일 미국의 장거리 전화 회사인 월드컴이 사상 최대규모인 38억달러의 회계부정을 실토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과거 G8 정상회의는 잘 나가던 미국 경제를 위한 제전(祭典)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번 G8 정상회의는 달러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고, 미 정부재정이 흑자에서 적자로 반전하고, 시장의 신뢰를 뒤흔드는 미국 기업들의 스캔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열렸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전 의장인 폴 볼커는 25일 월드컴의 회계부정 사실이 드러나기 전 "미국의 회계 관행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뒤이어 튀어나온 월드컴의 발표는 그의 경고를 사실로 확인시켜 줬다.

월드컴은 미국에서 둘째로 큰 장거리 전화 회사다. 직원수만 8만명이고,2천만명의 고객들이 월드컴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월드컴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을 만큼 미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회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월드컴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 한때 60달러까지 올라갔던 월드컴의 주가는 1달러도 안되는 값으로 곤두박질했다.1천억달러 이상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쉽게 말해 포르투갈이나 이스라엘의 연간 국내총생산에 해당하는 부(富)가 지구에서 사라진 셈이다.

월드컴의 몰락을 촉발한 회계부정은 얼마전에 벌어진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의 부정회계 파문을 떠올리게 한다. 엔론과 마찬가지로 월드컴도 지난 10여년간 주식시장의 총아였다. 그러나 월드컴은 투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부정행위에 기댔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월드컴도 엔론처럼 아서 앤더슨에 회계감사를 의뢰했지만 앤더슨은 본연의 임무 수행에 실패했다. 앤더슨은 이익을 과다계상한 월드컴의 2001년도 회계장부를 '무사통과'시켰다.

월드컴 사건은 어떤 의미에선 엔론 사태보다 더 심각하다. 부풀린 이익 규모가 38억달러로 더 많은 데다, 수법 또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엔론은 "대기업의 재무·회계 구조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부정이 빚어졌다"고 주장했다. 엔론의 복잡한 기업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회계사나 이사회, 월가(街)의 분석가들을 비난해선 안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월드컴은 이런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월드컴은 네트워크 장비 보수에 쓴 비용을 자본지출로 불법 계상하는 등 가장 조악한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기만했다. 월드컴 경영진이 감히 이같은 속임수를 쓸 수 있었던 것은 회계사들의 고분고분한 태도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들리는 한가지 희소식은 상원 은행위원회의 폴 사바네스 의장이 발의한 회계감시 법안인 '사바네스법'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개혁을 두려워한다. 폴 오닐 재무장관은 최근 "구체적인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시장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불평했다. 오닐 장관은 시장을 뒤흔드는 요인은 기업회계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정리=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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