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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달러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1달러=1유로=1백20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달러화 가치가 연일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실적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엔론·월드컴 등 미국 기업에서 대형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1백19엔대로 밀렸다. 종가는 전날보다 0.74엔 하락한 1백19.57엔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9월 28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날 뉴욕 시장에서도 1백18엔대까지 갔다가 조금 회복해 1백20.09엔으로 장을 마쳤다.

유로당 달러가치도 26일 뉴욕에서 0.99달러선으로 미끄러졌다.2년4개월 만에 달러화와 유로화 가치가 거의 같아진 것이다. 달러 약세는 원화 강세로 나타나 27일 환율은 달러당 1천2백2.9원을 기록했다.

◇신뢰도가 말한다=JP 모건증권은 "월드컴의 초대형 회계부정 사태가 미국 경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시장에서 달러화 매도와 유로·엔 및 영국 파운드화 매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당국이 회계부정에 대해 신속하고도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이같은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낙관과 비관이 교차했으나 회계부정 파문이 확산되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득세하고 있다. 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던 소비심리도 다시 위축세다. 1분기 5.6%에 달했던 성장률은 2분기에 절반 수준으로 꺾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에다 경상수지 적자는 불어나고, 이를 메워주던 해외자본 유입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미국의 1분기 경상수지 적자는 1천1백25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해외자본 유입은 전분기에 비해 30% 가까이 준 6백99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반해 유럽과 일본은 경상수지 흑자 추세를 이어가며,경기회복세도 나타나면서 유로화와 엔화 가치가 강세를 타고 있다.

◇달러 약세 방치하나=일본은 올 들어 엔화 가치가 9.5%나 상승하자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일본 정부가 최근 3조2천억엔을 풀어 달러화를 사들였다고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시장 개입에 부정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6일 캐나다에서 열린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달러 가치는 시장의 힘과 경제상황에 따라 적정 수준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겉으로는 '강한 달러'정책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달러화 약세를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미제조업협회(NAM)도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했다.

이에 대해 모건스탠리증권은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소비와 기업투자를 위축시켜 세계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달러화 가치가 20% 떨어지면 세계경제 성장률은 0.5~1%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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