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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파 못봐주는 지옥코스, 선수 망신 주는 대회 ‘악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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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호 16면

1969년 US오픈 우승자 오빌 무디는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며 한국에도 흔적을 남겼다. [AP=본사 특약]

챔피언십의 목적은 가장 뛰어난 선수를 가리는 것이다. 진정한 최고를 가리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야 하고 공정하며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US오픈을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그런 가치를 추구한다. 특히 변별력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파(Par)의 가치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골프는 코스와 선수의 대결인데 장비의 발전으로 인해 코스가 유린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아온 메이저 골프대회의 계절 <3>최고의 격전장 US오픈

그래서 우승 스코어가 파 근처가 되도록 코스를 만든다. 한때 이런 생각이 느슨해지는 기미가 있었는데 2000년 타이거 우즈가 12언더파로 우승하자 화들짝 놀라 다시 난코스를 만든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다. 여자 US오픈도 마찬가지다. 8일 오크몬트 골프장에서 시작된 대회 1라운드에서 언더파는 5명뿐이었다.

21세기 들어 US오픈은 전장 7500야드 정도의 코스에서 열린다. 그것도 파 71 혹은 70이다. 쉬운 홀에서 페어웨이는 극단적으로 좁아지기도 한다. US오픈의 러프는 다른 대회 러프와 확실히 구별될 정도로 길기 때문에 ‘US오픈 러프’라는 말이 따로 있다. 그린은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단단하다. 잔디가 거의 말라 죽을 정도로 물을 주지 않고 자르고 누른다. 딱딱한 그린에 공을 못 세워 그린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는 최고 선수의 모습은 US오픈의 일상이다. 할 수만 있다면 US오픈은 그린 스피드도 오거스타 이상으로 했을 것이다. 최경주는 “마스터스에서는 소나무 숲과 갤러리들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공이 그린에 멈춰서 있지만 다른 대회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했다가는 공이 굴러 경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대회는 가장 더울 때 한다. 살아남아 우승한 선수는 비인간적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코스가 어렵고 매우 더웠던 2004년 우승자인 레티프 구슨을 두고 언론은 “번개에 맞고도 살아난 선수라 그 악조건에서 우승했다”고 했다. 경기를 망친 선수들은 경기 후 “선수 망신 주기 위해 만든 대회”라고 짜증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USGA 데이비드 페이 사무총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어렵고 공정한 대회로 남을 것이다. 그중 ‘어려운’이라는 말이 강조된다”고 말했다.

레티프 구슨

올해는 비교적 시원한 북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에서 열렸다. 그래도 2라운드 후반 9홀에서 양용은은 49타를 쳤다.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도 끝내 코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비교적 덜 유명한 그레이엄 맥도웰(북아일랜드)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그래서 일부 선수는 US오픈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코스가 지나치게 어려워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뛰어난 선수들도 줄줄이 무너지고, 의외의 선수가 우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스터스는 대개 잘 알려진 스타들이 우승하는데 US오픈은 무명 용사들이 가끔씩 우승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69년 챔피언 오빌 무디다. 그는 밑바닥인 1차 예선부터 거쳐 올라왔다. 무디 이후 41년이 지나는 동안 1차 예선을 거쳐 우승한 선수는 없다.
그가 아직도 골프 역사에 남아 있는 것은 이채로운 경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30대 초반까지 군인이었다. 하사관(sergeant)으로 근무하다 전역했기 때문에 그의 별명이 사지(sarge)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한국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초창기 한국 골프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는 59년과 66년 한국프로골프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한국오픈에서도 세 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무디는 아버지가 그린 키퍼였다. 그는 고교 시절 골프 선수로 활약했고 오클라호마대 골프팀에 진학해 몇 주를 보내다 군에 입대했다. 미군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골프광인 미 8군 사령관에게 차출되어 한국에 왔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재 코스 설계가로 일하고 있는 김학영 프로다. 그는 59년부터 61년까지 8군 사령관 카터 매그러더, 최세황 국방부 차관, 무디와 함께 미군 골프장과 군자리 서울 골프장을 오가며 매주 라운드를 했다고 한다. 김학영씨는 “무디는 드라이브샷과 아이언이 송곳처럼 정교했다. 정확도는 거의 100%였다”고 말했다. 무디는 당시 아마추어였으나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프로선수권에도 나왔다. 60년 무디를 누르고 우승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한장상 고문은 “무디는 롱게임이 매우 뛰어났지만 퍼팅과 벙커샷은 별로여서 겨우 그를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디는 67년 전역하고 PGA 투어에 갔다. 그러나 성적은 별로였다. 퍼팅 불안으로 그린 위에 올라가면 마구 흔들렸기 때문이다. 69년 US오픈에서 우승할 때 그는 당시로선 낯선 역그립을 잡고 퍼팅을 했다. 이후에도 그는 퍼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PGA 투어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시니어 투어 선수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마술 방망이가 다가왔다. 시니어 투어 동료인 찰리 오언스가 쓰던 빗자루처럼 긴 퍼터다. 집에서 만든 50인치 샤프트를 단 퍼터를 가져왔는데 그립 끝을 몸에 고정시키고 스윙해 매우 안정적이었다. 브룸(broom:빗자루) 퍼터를 발명한 사람은 오언스였지만 이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무디다. 89년 US 시니어 오픈에서 무디는 이 퍼터로 우승했다. 이후 샘 토랜스와 베른하르트 랑거, 비제이 싱 등이 이 퍼터로 재미를 봤다. 어니 엘스 등 일부 선수는 롱퍼터가 부정 퍼터라고 주장했지만 R&A와 USGA는 브룸퍼터가 합법적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무디는 시니어투어에서 긴 퍼터로 11승을 했고 2008년 세상을 떠났다.

브룸 퍼터 논란까지 겹치면서 오빌 무디의 US오픈 우승은 깜짝 우승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무명 무디가 우승해 US오픈의 공정성까지 공격받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선수에게 문호를 연 US오픈이었기 때문에 무명 용사의 우승 드라마도 가능했다는 반론도 거세다. 러프가 거의 없는 온실 같은 마스터스와 달리 US오픈은 잡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골프 최고의 격전장이라는 얘기다.

스타들만 초청하는 마스터스는 스타들 외에는 우승할 수가 없다. 골프 스윙은 항상 변하며 69년 여름 무디가 가장 뛰어난 골퍼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디는 US오픈에 어울리는 강인함과 정교한 드라이버를 가지고 있었다. US오픈은 페어웨이가 좁고 러프가 매우 깊어 드라이브샷의 정확성이 매우 중요하다. 조니 밀러는 그가 역대 본 선수 중 드라이버가 가장 정교한 선수 3명 중 한 명으로 오빌 무디를 꼽았다.

메이저대회에서 가장 거친 전투는 US오픈에서 나왔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벤 호건이 절뚝거리며 연장 끝에 우승한 50년 대회와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91홀을 완주한 타이거 우즈의 투혼이 돋보인 2008년 대회다. US오픈은 푸른 제복을 입고 젊은 시절을 보낸 무디와 어울린다. 김학영씨는 “제약이 많은 군인 신분으로 그렇게 훌륭한 실력을 키운 무디는 메이저 우승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골프계에는 ‘BPNTHWAM’라는 암호 같은 말이 있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선수 중 최고 선수(Best Player Never To Have Won A Major)의 약자다. 실력이 좋다는 칭찬 같기도 하지만 메이저 대회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라는 뜻이 더 강하다. US오픈은 짓궂게도 이런 선수들만 모아 한 조를 짠다. 올해 US오픈에서 ‘BPNTHWAM’조는 스티브 스트리커, 세르히오 가르시아, 폴 케이시였다. 스트리커와 가르시아는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갔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메이저 우승은 못해 봤다. 오빌 무디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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