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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업들 잇단 會計부정 자본시장 투명성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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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해 말 에너지 거래기업 엔론의 파산으로 불거진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파문이 잦아들기는커녕 확산하고 있다. 미국 2위의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이 25일 지난해부터 올 1분기까지 38억달러의 이익을 부풀렸다고 실토하면서 증시와 통신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미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투명성이 높다던 그동안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꼬리 무는 회계부정 스캔들=월드컴은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돈을 이익으로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걸 제대로 장부에 반영할 경우 월드컴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3백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로 파산위기에 처한 월드컴의 창업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회사에서 쫓겨났다. 회사를 이렇게 부실하게 꾸려오면서도 그는 매년 5백만달러의 연금을 받기로 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 대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분식회계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월드콤은 부정회계 책임을 물어 최고재무책임자도 해임하는 한편 회생을 위해 전체 인력의 28%인 1만7천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이 회사 주가는 이날 시간외 거래에서 60% 가까이 폭락했다.

1983년 미시시피주에서 지역통신사업자로 출범한 월드컴은 이후 70회에 걸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려 왔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상당한 회계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분식회계 스캔들은 엔론사태에서 시발됐다. 회계를 맡았던 아서 앤더슨은 사실상 퇴출됐다.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도 임대한 복사기를 판 것으로 계산하는 수법으로 1997~2000년 순이익을 15억달러나 부풀렸음이 드러났다.제록스 회계감사를 맡았던 KPMG의 담당 회계사가 이 사실을 알고 장부수정을 요구하자 제록스는 회계사를 교체해 버리고 말았다.

IBM도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때 광 송·수신장비 사업부문 매각대금 3억달러를 특별이익이 아닌 영업수입으로 잡아 부실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제너럴 일렉트릭(GE)이나 AOL타임워너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도 의심을 받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20일자)는 97년부터 최근까지 1천개 이상의 미국 기업이 실적을 부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재무제표를 수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 신뢰 바닥=주식 투자자들은 자연히 미국 기업에 등을 돌리고 있다.최근 증시침체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미국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찰스슈왑 계열사인 유에스트러스트가 연소득 30만달러 이상의 고액투자자 1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5%가 상장사의 회계장부에 대해 불신감을 나타냈다.또 73%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내놓은 매수추천 종목을 믿지 않으며,66%는 상장사 경영진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맞물려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올들어 나스닥지수는 27%나 하락했으며,다우지수는 9% 떨어졌다.

SEC는 기업들의 부실회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 SEC 산하에 감독기구를 설치해 회계법인의 업무 관행을 감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재홍·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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