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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뉘우친다니 기부 좀 하시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할 마음은 없나요?”

지난달 23일 서울 남부지방법원 308호 법정.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피고인 김모(60·여)씨에게 박석근 판사가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다소 놀란 김씨는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판사는 이날 김씨에 대한 선고를 연기했다. 김씨가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지 여부를 양형에 참작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김씨는 성형외과 의원에 주름이나 지방을 제거하려는 환자들을 소개해 주고 돈을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지난 4월 구속 기소됐다. 2008년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210명의 환자를 소개하고 모두 2억8000여만원을 소개비로 받은 혐의다. 이른바 ‘환자 브로커’였다. 그는 수술비의 30~50%를 병원 측으로부터 받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지인에게 병원을 소개하면서 돈을 벌게 되자 점차 발을 넓혀 환자를 끌어왔다. 그러나 의료 알선행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였다.

판사로부터 기부금 제의를 받은 김씨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양로원에 2000만원을 기부했다. 재판 과정에서 불법 행위로 얻은 소득의 소득세를 자진 납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박 판사는 김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김씨가 고령이고 초범인 데다 수술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아 피해자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 행위로 얻은 소득의 세금을 자진 납부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며 반성한 점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박 판사는 김씨에게 “석방되면 이웃을 도우며 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판사는 “실형과 집행유예의 경계선에 있는 사건이었는데, 실형으로 가혹한 처벌을 하는 것보다 반성과 봉사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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