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스라엘 사례’ 제시 … 나라 이름은 빼고 ‘attack’ ‘condemn’ 넣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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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한 지 35일 만인 9일 의장성명이 채택되기까지는 반전이 거듭됐다. 당초 정부는 대북 규탄 결의를 목표로 삼았다. 안보리에서 중국과 표 대결까지 불사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난달 1일 미국을 방문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이 같은 입장을 미국에 전했다.

그러나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과 표 대결은 미국이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며 사태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었다. 중국도 결의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에 이어 중국을 찾은 천 차관과 만난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안보리에서 막 통과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국제구조선 공격 규탄 의장성명을 언급하면서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거명하지 않되 전체적 문맥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천안함 사건 처리도 이 같은 방식의 의장성명으로 매듭짓자는 암시였다. 추이톈카이는 “한국과 우리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들이 분명히 있다”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후 한·미·일 당국은 제재 형식보다 내용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의 거부감이 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직접 설득을 했음에도 중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첫 반전은 지난달 14일 유엔 안보리에서 벌어진 남·북 브리핑 대결에서 이루어졌다. 파워포인트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동원한 남한 합조단의 브리핑이 북한을 압도하면서다. 특히 남한 브리핑에는 합조단에 들어갔던 5개국 대표가 참여해 이사국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중국·러시아조차 남한 브리핑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합조단 조사 결과를 안보리가 인정(endorse)하는 것엔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관리들은 한국의 참여연대가 합조단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안보리에 보낸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의 기를 꺾으려 했다고 한다. 이들은 “조사 결과에 의문을 가진 건 우리만이 아니라 한국 내에도 있지 않느냐”며 “한국 정부가 국내에서 (합의하지) 못하는 걸 외국에 해달라고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선 “북한보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처리 제동에 더 기여한 셈”이란 푸념이 나왔다고 한다.

브리핑 직후인 19~27일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대표가 단체 출장을 간 탓에 뉴욕에서 천안함 논의는 잠복했다. 대신 워싱턴·도쿄·베이징과 서울 간에 물밑 접촉이 이어졌다. 이때 중국이 돌연 현실론을 들고 나왔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어뢰 공격이라는 남한 주장을 반박하기보다 섣부른 안보리 제재가 북한의 반발을 불러 한반도 안정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중국의 쇠고집에 지친 한국이 “그렇다면 (의장성명 대신 결의를 도출하기 위한) 찬반투표로 해결하자”고 제안하자 중국은 펄쩍 뛰었다.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냐”며 “(결의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찬반투표를 하면 중국은 기권이나 반대를 할 수밖에 없어 천안함 처리를 무산시킨 책임자로 몰리게 되고 한국의 대중 감정도 악화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교착상태에 빠진 논의는 지난달 24~26일 주요 8개국(G8)과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시 한번 반전을 겪었다. 미국과 일본 주도로 G8이 “남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G20에 참석한 이 대통령은 중국 원 총리와 다시 만나 안보리 협조를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됐다는 건 명백한 진실”이라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강경하던 중국의 태도는 7월 초가 되면서 누그러져 의장성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문안 협상이 본격화됐다. 중국은 ‘공격(attack)’이란 단어나 남한 합조단 조사 결과를 성명에 넣을 수 없다고 버텼다. 자구 한 자를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천안함이 공격 받았고 ▶이를 규탄한다(condemn)는 문구를 넣되 ▶범인이 북한이란 언급은 빼며 ▶북한 입장도 함께 담는다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서울=강찬호 기자
뉴욕·워싱턴=정경민·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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