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문고리 예상보다 빨리 당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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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9일 금리인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담감을 떨친 모습이었다. 어깨는 가벼워 보였다. 9일 출구의 문고리를 잡아 당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그랬다. 그는 방향을 튼 만큼 새 길(긴축)로 계속 가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시장은 금리 인상을 환영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13.3원 오른 1196원에 거래를 마쳤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떨어지는 게 보통이지만,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4.37포인트 올라 1723.01을 기록했다. 금리 인상이 출구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고, 한국 경제의 성장 기조를 확인하는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다만 인상 시점은 시장의 예상을 깼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상반기 경제지표가 발표된 이후인 8~9월을 디데이로 봤는데 예상보다 빨랐다”고 말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배경의 핵심은 물가 불안이다. 이날 발표된 ‘통화정책방향’은 지난달과는 톤이 달랐다. 우선 경기 상승세가 더 확연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나 소비·투자 같은 내수의 증가세가 일시 주춤한 모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달엔 ‘수출이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소비·투자 등 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이번 인상에 대해 ‘전격’이나 ‘깜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걸 경계했다. 이미 깜빡이는 충분히 켰으니, 난폭운전이 아니라는 거다. 실제 6월 수출은 세계 경기 회복세로 사상 최고치인 427억 달러를 기록했다. 제조업 생산 증가세도 확대되면서 평균가동률은 82.8%까지 올랐다. 1995년 6월(83.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반기에는 국내총생산(GDP)갭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 총재는 “이 추세라면 올 1분기 8.1%(전년 동기 대비) 성장한 우리 경제가 2분기에도 7%대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취업자 수도 늘어난다. 지난해 7만 명 줄었던 취업자 수는 올해 중 30만 명 이상의 증가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현재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전체의 30%나 된다. 경제의 체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곪은 상처를 도려내야 하는 결단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기가 좋아지면 부작용도 있게 마련이다. 바로 물가 상승이다. 지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 중후반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5월 생산자물가가 16개월 만의 가장 큰 폭인 4.6%(전년 동월 대비) 올랐다. 6월에도 똑같이 4.6%였다. 김 총재는 “수요 압력이 증가하고, 일부 공공요금도 인상될 것으로 보여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기준금리 인상으로 빚이 많은 개인이나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 하지만 0.25%포인트 인상은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는 게 금통위의 시각이다. 현재 가계대출의 71%를 소득 수준 상위 40%에 드는 사람들이 쓰고 있다. 김 총재는 “이 정도의 금리 인상으로 이들이 충격받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앞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와 폭으로 긴축이 이어질지에 쏠린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기준금리를 한 번 올리고 마는 건 의미가 없다”며 “시장 금리를 선도하기 위해서도 당분간 0.25%포인트씩 계속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런 전망에 대해 직접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간담회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은행의 역할에 맞도록 운영해 나가겠다.”

한은의 설립 목적은 ‘물가안정’이다. 김 총재가 이에 전념하겠다는 말은 앞으로 돌발 변수만 없다면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종윤·한애란 기자

◆GDP갭=잠재GDP(물가상승률을 가속화시키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능력)와 실질GDP의 격차를 말한다. GDP갭이 플러스이면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인다는 의미다.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긴축정책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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