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수용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 의회의 상원과 하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남북한과 중국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참으로 고무적이다. 미국 의원들은 이민과 정치적인 망명에 관한 법을 고쳐서 북한을 탈출하는 난민의 일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펴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외국인의 정식 망명신청은 미국땅 안에서만 할 수 있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제한된 숫자의 탈북자라도 미국에 정착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의 인도주의적 배려가 실현될 전망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국 의회가 탈북자들을 수용하도록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데 성공할 것인가에 관계없이 탈북자들에 대한 그들의 구체적인 관심은 앞으로는 숫자가 더욱 늘어날 탈북자 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너무 성급한 몽골 정착촌

탈북자 문제가 국제화되면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상황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의 유일한 탈북 루트로 이용되는 중국이 외국 공관에 뛰어드는 북한사람들의 신병을 처리할 때 세계 여론을 더욱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국은 지금같이 외국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를 강제로 끌어내고, 그러는 과정에서 외교관들에게 폭행하는 비외교적인 행동을 자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국 정치인들의 탈북자 지원 움직임은 아낌없는 갈채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이 그들의 선의(善意)에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적인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탈북자들에게 임시보호를 받는 난민의 지위를 인정해 미국 체류를 허가하자고 주장하는 마크 스티븐 커크 하원의원의 경우를 보자.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북한방문의 경험이 있는 그는 1994년 제네바 핵합의는 클린턴의 당리당략의 산물로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대북 강경론자다.

커크 의원 같은 공화당의 강경파는 탈북자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정권의 무능과 잔학성을 세계여론에 널리 고발하는 데 더 관심을 갖는다. 커크 의원과 그의 동조자들은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의 북한 정권은 붕괴되어 마땅한 부도덕한 체제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에드워드 케네디를 포함한 민주당의 순수 인권파 의원들은 탈출자 돕기 플러스 알파를 기대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는지도 모른다.

의회 쪽의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는 가운데 리처드 프리처드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회담이 잘 돼 북·미회담이 정식으로 재개된다면 부시 정부는 의회로부터 인권문제를 북·미회담의 의제로 진지하게 다루라는 압력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북·미회담은 재개와 동시에 결렬되고 말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나 중국과 몽골 접경지역에 탈북자 정착촌 또는 임시 수용소를 만들자는 구상에는 더 큰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그런 구상에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은 작지만 탈북자 캠프가 만들어진다면 그 위치는 중국과의 국경에 가까운 몽골 땅의 어디가 될 것이다. 몽골이 탈북자 캠프 설치에 동의했다는 말도 들리지만 아직은 성급한 판단 같다.

反체제세력 양성說 황당

탈북자 캠프에 무슨 함정이 있다는 것인가. 워싱턴의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는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탈북자 캠프에서 김정일(金正日)체제의 대체세력을 훈련한다는 구상을 다듬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그런 구상에 공화당 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울포위츠는 대표적인 북한체제 붕괴론자다.

탈북자들을 돕자는 인도적 선의는 정말 고맙다. 그러나 북·미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는 미국정부가 소수의 북한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북한사람들을 몽골의 탈북자 캠프에 수용하는 것이 북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북·미대화에 큰 걸림돌이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탈북자 캠프에서 북한 반체제 세력을 길러낸다는 구상은 말만 들어도 황당하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균형이다. 미국은 탈북자를 돕는 한편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대화재개에도 진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