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에 빛난 '위대한 히딩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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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히딩크 감독은 비록 자신이 조련한 한국팀이 독일에 석패해 결승 문턱에서 물러섰지만 세계적 명장임을 확인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끌어올린 데 이어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도 기적처럼 한국을 준결승까지 진출시켰기 때문이다.

히딩크 외에도 소속팀을 두차례 이상 4강에 올린 감독은 몇명 있었다.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포조 감독(1934·38년)을 시작으로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 감독(70·98년)에 이르기까지 8명이 두차례씩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서독의 헬무트 쇤 감독(66·70·74년)은 세차례나 팀을 4강에 진출시키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딩크 감독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그는 월드컵 본선 참가국 규모가 32개국으로 확대된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연속으로 4강 진출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94년 미국 월드컵 때까지 본선 참가국 수는 24개국. 이에 앞서 82년까지는 16개국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94년까지는 조별예선에서 3위를 차지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선 참가국 수가 크게 늘어난 98년 대회부터 조별예선 3위는 곧 귀국행 보따리를 싸는 것을 의미했다. 82년까지 조별예선을 거친 뒤 한번만 더 이기면 곧바로 4강에 오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셈이다.

참가국이 32개로 늘어나면서 강팀들이 몰려 있는 '죽음의 조'라는 말도 생겨났다. 강팀끼리 같은 조에 배정돼도 예전에는 와일드카드(각조 3위끼리 전적을 비교해 16강 진출권을 주는 것)제도가 있어 조3위로 16강에 오르는 길이 있었다. 그러나 98년부터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처럼 1승1무1패를 기록하고도 탈락하는 팀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지난 대회(프랑스·브라질·크로아티아·네덜란드)와 이번 대회(한국·브라질·독일·터키) 4강을 비교할 때 브라질 외에는 모두 다른 얼굴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강팀도 탈락이 다반사인 최근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4강 진출은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바로 세계가 히딩크 감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업적이 돋보이는 것은 그가 맡은 팀이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 선진국이 아닌 한국팀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16강은커녕 다섯차례 출전에 4무10패가 전부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팀이다. 2000년 아시안컵에서도 3위에 그친 한국은 대회 직전 축구전문가들이 조별예선 통과도 어렵다고 평가한 팀이었다.

그런 한국을 맡은 지 1년6개월 만에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히딩크 감독이다. 우리가 맞붙었던 상대팀들을 따져보면 히딩크의 위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조별예선에선 우승후보 포르투갈과 우승까지 장담하던 폴란드를 만났고, 16강전과 8강전에서는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맞서야 했다.

한국이 그런 강호들을 꺾고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히딩크 감독이 키워낸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바탕이 됐다. 경기마다 빛났던 그의 전술과 용병술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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