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국원이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들어가나 내일 들어가나 혼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늘 들어가면 뒈지게 야단맞고, 저녁 굶고, 자고 일어나서도 며칠 동안 온 식구의 괄시를 받아야 한다. 내일 저녁 때쯤에 슬슬 기어 들어가면 식구들이 걱정을 하다 못해 지쳐서 반가워하는 분위기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싹싹 빌고, 좀 심하게 나오면 또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오히려 세게 나가야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하긴, 모두들 마음 속으로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이 자유롭고 멋진 날이 하루에 끝난다는 건 너무도 아쉬웠다.
이튿날 황혼 무렵에 우리는 분교 정문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꾸려갔던 담요며 우비와 그물을 옆구리에 끼고 되도록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호식이는 아마도 저희 형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을 것이다. 그 애 형수가 더욱 혼이 나야 한다고 옆에서 거드는 소리를 담 너머로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원이와 좀 더 있다가 형이 잠든 사이에 살그머니 들어갈 모양이었다. 나는 먼저 뒤란 쪽 판자 울타리에 기대서서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부엌에서 일하는 누나가 밥 짓는 듯한 기척이 들렸고 마당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앞의 저희 방 마루에 앉았던 누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어머니를 불렀다. 다행히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아래 위를 한번 쓱 훑어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 그거 내려놓구 나하구 나가자.
어디 갔었느냐, 누구와 갔느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어머니가 내 손을 그러쥐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너 학교 다니기도 싫고, 공부하기도 싫고, 집도 싫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둑 위로 올라가 -지금은 여의도에서 영등포 로터리 쪽으로 나가는 다리가 놓여 있는- 미군 공병대가 놓은 나무다리 아래를 지나 언덕 위에 벽돌집이 있는 '귀신바위' 쪽으로 갔다.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하늘 저 끄트머리에 노을의 자잘한 띠가 남아 있고 별이 보이기 시작한 그런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목을 이끌고 옷을 입은 채 강물 속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나하구 강물에 빠져 죽자!
'귀신바위' 부근은 전에 오랫동안 모래를 채취한 곳이어서 물속에 숨어 있는 웅덩이가 많았다. 헤엄에 익숙한 동네 아이들도 거기서는 잘 놀지 않았다. 수초가 많았고, 한 해에 한두 차례씩 익사 사고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