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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인물들의 삶 희극적 시선으로 풀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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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주의하시라, 성석제의 장광설에 잘못 걸리면 웃음독(毒)이 오를지도 모른다. 낮술에 취하면 부모를 몰라보지만 웃음독이 오르면 직장 상사도 안중에 없다.

그러니 명랑사회 구현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이나 실적 지상주의를 철칙으로 삼는 회사에서 그의 소설을 읽다가 홀리면 경고 두 번을 받고 바로 퇴장이다.

그러나 시대의 이야기꾼이란 평가를 받는 중견 작가 성석제(42·사진)의 소설을 두고 "웃기다"고만 한다면 작가에게 '절반의 실패' 딱지를 붙이는 오심 판정이 되리라.

코미디라는 당의 속에 든 성석제 소설은 자유로운 개인성을 추구하는 날 선 칼을 가지고 있다. 일곱 편의 중·단편으로 이뤄진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들인 황만근, 남가이, 상호친목계(한번 계원이 되면 상호간에 평생 친구가 되어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키는 계) 등은 어찌보면 비극적인 인물이다. 사실 그들 자체가 비극적인 게 아니라 옆집 아저씨, 선생님, 경찰서장님 그리고 친구놈들이 그를 비극적으로 만든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때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농가부채탕감 농민궐기대회에 참가했다 사라진 우리의 황만근씨를 두고 집성촌의 마을 이장은 이렇게 야속한 소리만 하고 있다. 1백리 길을 경운기를 몰고 가며 시위하자고 했는데 새벽부터 고물 경운기를 탈탈 거리며 몰고 간 사람은 만근씨밖에 없었다. 치사한 인간들은 트럭, 심지어 자가용 타고 시위하러 가고, 만근씨만 돌아오다 죽었다.

그래도 우리의 만근씨는 사랑스럽고 심지어 영웅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사람들이 꺼려하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에선 세계 최고"다. 예컨대 제물로 올릴 살아있는 돼지에 때때옷 입히기, 공동우물 청소, 도랑청소….

만근씨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할 인간들, 다시 말해 그 털복숭이 양심 불량자들이 이뤄낸 척박한 이기심의 땅에서 만근씨는 살았고, 웃겼고, 그러다 우리 가슴에 한 방울 눈물을 떨궜다.

작가는 나아가 세상의 당연하다는 질서를 조롱한다.

향토예비군법·식품위생법 위반과 간통죄 등으로 대부분이 전과자인 상호친목계원들이 땡볕아래 모였다. 만민 평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조직폭력배로 몰린 뒤 이를 갈고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박해받지 않고 살려면 결론은 하나였다. 자기들도 지역의회 의원을 배출해야 했다.

"대관절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어떤 괴물 같은 놈이 만든 건가. 햇빛은 뜨거워 죽겠는데, 어떤 강아지가 몰고 다니는 개뼉다귄가, 개고기는 익어가는데."('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계원들은 후보자 선출 토론을 벌이다 쾌활천에 놀러온 진짜 깡패들과 어이없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 아, 이 비극적인 코미디여.

이렇듯 성석제 소설의 압권은 비극적 삶을 희극적 시선으로 포착해 이야기의 난장을 트는 데 있다. 또 세상의 천박함과 일상의 지리멸렬함 사이의 경계에서 히죽 웃으며 누런 이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처연한 생명력이란.

천덕꾸러기로 태어났으나 천하제일의 미남으로 성장해 향기(사실은 똥냄새+∝)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남가이('천하제일 남가이'), 도박의 종류를 불문하고 첫판은 반드시 이기고 마는 '나'('꽃의 피, 피의 꽃'),

"삶은 무엇인가" 식의 둔중한 질문을 던져 독자에게 옷깃을 여미고 삶의 비의를 찾으라는 기존 소설 문법과 달리 성석제는 이렇듯 "이런 게 삶이다"라고 질문의 순서를 바꾼다. 그 순간 배반의 코미디가 주는 페이소스에서 몸이 떨려온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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