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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窓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조태호

연못에 사는 단세포동물인 짚신벌레는 가장 하등한 동물로서 주로 세포분열의 방식으로 번식하지만, 가끔 유성동물처럼 두 마리가 서로 결합하기도 한다. 그런 때 두 마리의 짚신벌레는 물 속에서 호르몬과 같은 특수한 액체를 방사해서 서로 상대방을 끌어당긴다. 정말로 불가사의한 무성동물의 결혼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성게나 불가사리 같은 바다 속의 무척추동물의 경우에는 성의 구별은 있어도 그 생식방법이 식물처럼 단순해서 암컷과 수컷이 전혀 접촉하는 법이 없다. 단지 성숙하게 되면 암수가 각기 물 속에 생식액을 방출, 그것이 우연히 서로 결합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물고기의 경우는 이보다 약간 고급의 생식방법을 취하고 있어서 암놈이 방출한 알 위에 수놈이 정액을 뿌리는 체외수정의 방법이지만, 이것 역시 신체적 접촉은 일어나는 일이 없다.

암수가 서로 상대를 끌어당겨서 접촉하는 현상은 지렁이나 갯지렁이 같은 환형동물에서 비로소 목격되는 생식방법이다. 암놈이 일종의 액체를 방출하고 그것에 의해서 수놈이 자극을 받는다고 하는 메커니즘인데, 게다가 지렁이란 동물은 자웅동체로서 두 마리가 서로 역방향으로 완벽하게 접촉하여 각자의 생식공(生殖孔)으로부터 정자를 교환하는 방식의 진일보한 생식방법을 택하고 있다.

성적 결합 방식의 발달사는 동물이 바다로부터 육지로 상륙한 진화의 과정과 병행한다. 즉 물 속에 사는 하등동물에서는 일반적으로 삽입기관으로서의 페니스가 없으므로 신체적 접촉이 일어날 수가 없다. 반면에 육상동물에서는 비록 곤충처럼 하등한 종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페니스가 존재하고 있어, 암수의 복잡한 접촉이 일어난다.

공기 중에서는 생식세포가 금세 건조, 사멸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암놈의 체내에 정자를 안전하게 들여보내기 위한 신체기관이 필요해졌고, 그로 인해서 페니스가 생식도구로서 진화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서로 껴안거나 애무하거나 키스하거나 하는 등의 인간의 애정표현과 아주 비슷한 행위를 하는 고등동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금 곤충에서 시작해서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암놈과 수놈을 끌어당기는 최대의 힘은 그들이 발산하는 특유한 냄새라는 사실을 현대과학은 이미 밝혀 놓았다. 따라서 냄새를 식별하는 감각이야말로 거의 모든 동물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최대의 인자가 되는 것이다.

나비나 나방 같은 곤충은 수십㎞라는 상상도 못할 만큼 먼 거리에서 암놈의 냄새를 알아차리고 달려온다. 또한 암캐의 질 둘레 취기선(臭氣腺)에서 분비되는 특이한 페로몬이 수마일 밖의 수캐를 자극하는 강렬한 자극제가 되는 것은 모두 페로몬 속의 특이한 냄새에 그 원인이 있다. 이 냄새를 맡으면 수캐는 갑자기 높아진 성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미친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면 인간의 경우는 무엇이 이성을 성적 흥분 상태로 몰아가는가?

인간의 후각은 현저하게 퇴화된 상태이고, 앞으로도 게속 퇴화하는 중이다. 인간의 여성에게도 질의 입구에 있는 바토린스선에서 발산하는 냄새가 있지만, 설령 그것이 냄새를 발산한다 하더라도 여성이 길거리를 활보할 때 그 냄새에 현혹되어 정신을 잃고 여성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남성은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런 냄새에 민감한 남성이 도대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바토린스선은 결코 매력적인 냄새를 가진 물질을 발산하지 않고, 단지 윤활유에 지나지 않으니 냄새의 매력은 인간에 있어 넌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작가 보드레르가 여자의 긴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고 거기에서 이국정서의 냄새를 맛보았다고 그의 글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특정의 여성을 상대로 한 경우에 불과할 뿐 냄새에 의한 도취상태는 아니다. 우선 먼저 창부의 머리카락 냄새는 귀부인에게서 나는 것과 같은 인공적 향료의 냄새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퀴퀴하고 역한 냄새일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여자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시큼한 땀 냄새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남자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만이 여성을 고르는 기준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냄새는 인간에 있어서 동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제2차적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촉각 역시 성적 매력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이성을 이끌어오기에는 역시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경우 청각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러시아의 신비주의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법열(法悅)의 시(詩)’라고 하는 교향곡은 남녀간 성행위에 대비한 신체적 조건이 차츰 형성되어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이것을 듣게 되면 누구나 성적 흥분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험적으로 그것을 감상해 보면 성적 자극성은 눈곱만치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만큼 청각은 주관적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인간의 남성이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후각도 아니고, 촉각도 아니고, 청각도 아니며, 오로지 눈의 작용, 즉 시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래서 여자는 늘 예쁘고 신체적 매력을 십분 강조하는 의상을 사고 싶어하는 것이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6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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