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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 LG의 무기 ‘자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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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어휴, 벌써 20분 기다렸어.”

요즘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선 점심시간마다 해프닝이 벌어진다. 직원들이 20~30분씩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트윈타워는 리모델링을 앞두고 엘리베이터를 순차적으로 교체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짜증을 내는 직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불평이래야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정도다. 오히려 한참 만에 온 엘리베이터에 탄 직원이 정원초과에 걸려 내리는 것을 보는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진풍경은 또 있다. 매일 출근시간엔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란 줄이 선다. 차례를 지키려는 줄서기다. 모두 LG 기업문화인 ‘인화’와 직결돼 있다. LG가 다른 그룹에 비해 발탁인사가 많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화와 함께 LG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자율’이다. 그 중심엔 2003년 출범한 지주회사 체제가 있다.

◆자율 경영=구본무 LG 회장은 평소 계열사 경영에 간여하지 않는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LG의 대표이사로서 계열사 CEO에 대한 인사, 계열사 간의 사업 조정, 중장기 비전 제시 등을 할 뿐이다. 1년에 계열사 CEO와 경영을 논하는 자리는 1월의 글로벌 CEO 전략회의와 6월, 11월의 CM 정도다. 경영은 계열사 CEO에게 맡겨 둔다. 소유와 경영의 철저한 분리다. 문제는 있다. 계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CEO 개인기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게 약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LG는 당장 실적이 나쁘다고 문책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인사를 잘못하면 영향이 오래갈 수 있다”(LG의 한 임원)는 지적이 있다.

◆자율 문화=프로야구단 LG 트윈스는 2002년 말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LG는 시즌 뒤 김 감독을 해임했다. 그의 ‘관리 야구’가 자율과 신바람을 중시하는 그룹 문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자율은 금융위기 후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진정한 경쟁력은 창의성에서 나오고, 창의성의 토대가 자율이기 때문이다. LG생명과학은 자율출퇴근제를 시행 중이다. 오전 7~10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8시간(점심시간 제외)만 일하면 된다.

LG화학은 오후 6시 ‘칼퇴근’이 원칙이다. 늦게 퇴근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찍힌다. 김반석 부회장은 ‘배터리론’을 강조한다.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충전해야 하듯이 사람도 충분히 쉬어야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는 ‘블루 아이’라는 사내 포털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신사업 아이디어를 올리고 다른 부서 직원들과 팀을 만들어 해결책을 찾으면 경영에 적극 반영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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