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제공격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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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온 나라가 월드컵 축구 경기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동안 바깥 세상에서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이 변하고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새로운 미국의 전략은 전 세계에 참으로 심각한 충격을 주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겁주기'억지 전략 포기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관계가 소련과의 양극(bipolar)대결관계로 전개되는데 따라 소련의 팽창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봉쇄(containment)정책을 채택하고 소련의 군사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억지(deterrence)전략을 채택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언론보도에 의하면 미국 정부는 억지전략에 추가해 선제공격(preemption)을 미국의 기본 전략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는 시사는 부시 대통령이 올해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이 대량 살상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함으로써 처음 나타났는데 부시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의도를 지난 1일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좀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기본적으로 부시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오늘날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위협들은 억지전략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래 억지전략은 상대방이 먼저 공격해 올 경우 대량 보복을 가하겠다는 의지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사전에 과시함으로써 적의 공격을 억지하는 전략을 뜻한다. 억지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격을 당한 후에도 상대방에게 대량 파괴를 가할 수 있는 보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적이 인지하고 첫번째 공격을 포기할 정도로 적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9·11 사태와 같은 비국가의 테러행위 경우에는 보복공격을 가할 만한 영토나 집중된 인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한 손실을 계산하는 합리성도 없기 때문에 종래의 억지전략은 기본 전제에서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광신자에게는 보복의 위협도 억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금 냉전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전략 상황에 놓여 있다. 양극체제 하에서 서로 상대방의 합리성을 전제할 수 있었던 냉전체제는 이미 과거에 속하고 지금은 세계질서를 주도한다는 미국도 자국 영토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군사행동을 취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가하겠다는 입장으로 나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참으로 오랫동안 잘 참는 강대국으로 알려져왔다. 부시 대통령이 선제공격 전략을 정식으로 채택하면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던 미국의 전통적 이미지는 끝이 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선제공격은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정보가 완벽하지 못하면 공격하지 말아야 할 목표를 향해 공격을 가했던가, 아니면 정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공격의지가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악의 축'에 포함된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적어도 오늘의 상황은 냉전시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억지전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논리는 일단 우리 입장에서도 수긍할 수 있다.

한반도 영향 따져봐야

우선 우리는 오늘의 전략상황과 선택의 문제에 대해 보다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선제공격 전략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한·미 양국이 유지해 온 대북 억지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은 전략문제를 너무 자신만의 문제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미국의 선택이 동맹국과 세계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고려해 주기 바란다.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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