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응원 열기' 특집 대담] "하나된 한국인 느낀 건 신기한 경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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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월드컵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서울시청 앞·광화문·대학로, 그리고 전국 대도시의 광장에는 엄청난 응원인파가 몰려들어 열광한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월드컵 축구에 대한 단순한 열정인가, 억눌린 욕망의 분출인가, 혹은 한풀이의 한 표현인가. 16강 진출의 흥분과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5일 오전 소설가 이경자(54)씨와 사회학자인 동덕여대 정준영(38)교수,'붉은 악마' 응원단 회원인 아주대 4학년 박상우(22·인문학부)군이 만나 월드컵 응원 열기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이씨는 전날 밤 대학로와 시청 일대, 넘실대는 열광의 바다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박군은 인천의 문학경기장에서, 정교수는 TV로 포르투갈전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세대의 눈으로 응원열기의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이경자=지난 4일 폴란드전 때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응원열기를 실감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네시간여 전부터 '붉은색 물결'로 넘실댔다. 대학로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에게 "어디가 이길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폴란드가 너무 잘한다. 우리가 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군중 속 붉은 티셔츠들의 생각은 달랐다."2-1로 이긴다"는 확신에 찬 대답이 나왔다. 40대 이상은 회의적이었지만 신세대들은 "우리는 이긴다. 당연히 이기는 축제에 간다"고 말한다.

▶정준영=동감한다.'확실히 이긴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그런 축제 분위기의 기폭제였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에 많은 사람이 동참한 것이다.

▶박상우=축구는 확실히 야구와는 다른 것 같다. 이상하게도 축구는 오래 전부터 진다는 생각을 안하는 신화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 언론도 축구만큼은 가능성이 있다고 늘 부추긴다. 축구가 특히 민족주의를 강하게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응원 현장에 있다보면 1987년 6월항쟁 때가 떠오른다. 그때 사람들에게는 비장함과 노골화하지 못한 비굴한 적개심·정의감·용기·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어제의 분위기는 완연히 달랐다. 단순하고 직선적이었으며, 내면의 적개심이라곤 한 방울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도 있었다. 어떤 여학생은 서성대는 50대 아줌마인 나에게 신문을 건네며 "여기 앉으세요"라고 했다. 나처럼 해방 정국에 태어난 세대에게 이런 현상은 눈물겹도록 반가운 일이다. 민족의 희망을 거기서 발견했다.

▶정=공격성은 없지만 공세적인 태도는 아직도 없지 않다. 예전엔 '빼앗긴 것'에 대한 저항이었으나,지금은 욕망에 대한 공세다. 결국 응어리의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6월항쟁과 이번의 응원열기는 본질적으로 닮은 꼴이다. 평가전에서 일정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폴란드·미국전을 거치며 그 열기가 배가된 느낌이다. 6월항쟁 당시 핵심집단이 '국민운동연합'이었다면, 지금은 '붉은 악마'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당시 주축 세대는 이제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이 됐다. 지금의 주축세대는 그들이 낳은 세대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바탕이 될 씨앗들이다. 응원의 현장에서 그들을 통해 미래를 본다. 식민지 시대에서 비롯된 열기의 씨앗은 지난 6월항쟁에서 일단 정리됐다.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피어난 지금의 젊은이들은 분명 새로운 힘을 표출하고 있다.

▶박=6월항쟁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이 살았다. 등록금이나 반미 문제 등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사회에 대한 저항감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이번의 응원열기는 잠재된 공격성이 스포츠로 이전된 것으로 본다. 모두가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느낀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여러 사람이 갑자기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나 같은 생각을 공유한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다.

▶이=이번 거리 응원은 붉은색에 대한 편견(레드 콤플렉스)을 쓸어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70~80년대라면 누가 붉은 옷을 입고 이처럼 활개를 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붉은색에 대한 편견이 우리 아이들한테는 너무나 우습고 말이 안되는 일임을 깨닫는 순간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다.

▶정=맞다. 굉장한 장벽 하나가 무너졌다. 버스 위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며 승리를 만끽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과거에 그런 행동은 폭동으로 규정됐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자기의 표현으로 본다. 시대가 바뀌면서 행동을 보는 '마음의 장벽'도 무너진 것이다. 거리응원은 그런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인 셈이다.

▶박=99년 코리아컵 대회의 멕시코전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수원에서 잠실까지 친구 네 명과 버스를 타고 왔다. 빨간 티셔츠를 입고.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어떤 아저씨는 "참 시뻘겋네"하며 야유를 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이=우리 민족이 요즘처럼 태극기를 뒤흔들었던 것은 3·1운동과 8·15광복 때 정도가 아닌가 한다. 흔드는 것도 모자라 몸에 감고 두르고 얼굴에 붙이기까지 했다. 이들의 말은 "우리나라가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정=어릴 적에 태극기는 모셔놓고 우러러야 하는 권위의 대상이었다. 이번엔 그런 금기가 깨졌다. 태극기가 '내것'으로 변한 것이다. 태극기에 대한 사랑은 깊어진 대신 권위는 약화됐다.

▶이=이번 거리응원은 여성도 스포츠의 능동적인 참여자임을 입증했다는 의의 또한 있다. 여성들이 스스로를 '여성'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은 남자고, 여성은 그저 여성이었는데, 이제는 여성을 인간으로 보는 지평이 트인 것이다.

▶정=맞다. 지금까지 거리는 남성의 영역이었다. 이번에 숱한 여성이 거리로 진출하면서 그런 벽이 허물어졌다. 성 구별이 사라진 것이다. 90년대부터 여성들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일부 종목에서는 팬클럽도 생겨났다. 그래도 이들의 활동공간은 여전히 체육관 안이었다. 이제는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는 쾌감을 여성들이 알게 됐다. 이런 변화의 사회적인 파장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박=여성들의 스포츠 진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때 농구나 배구 경기에 여고생 팬들이 몰린 적이 있다. 최근엔 그런 열기도 많이 시들해졌다. 그 때 여고생들이 진정 스포츠 팬이었다면 열기가 그렇게 쉽게 식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스포츠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정=남성과 여성이 스포츠를 대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여성은 연대감 등 다른 것을 위한 도구로 스포츠를 대한다. 반면 남성은 스포츠 자체를 즐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구분을 벗어나 남녀의 비슷한 성향이 동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에 보았다. 장기적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 팬들의 저변은 늘어날 것이다.

▶이=거리응원에 참여하면서 젊은이들의 문화에 전적으로 동감한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를 공동체 의식으로 전환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응원하는 젊은이들에게 "투표했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낯을 찡그렸다. 태극기를 패션화·사물화하는 귀여움도 있지만, 그 이면의 개인주의·이기주의는 버려야 한다.

▶박=개인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공동체 정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게 이번 거리응원이라고 생각한다. 응원 이후 어떤 불상사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정=동감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개인주의가 아직도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현상에선 아직도 집단주의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붉은 악마'들이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 표출이 압박받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불상사는 없어야 하겠지만, 지금 신세대에게도 집단주의의 억눌림이 존재한다. 개인주의가 더 발달하면 정치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직 철저한 개인주의를 이루지 못하다 보니 이런저런 것들이 겉돌고 상충된다.

▶박=한국이 16강전 혹은 8강전에서 탈락하면 열기가 삽시간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전의 국제대회에서 그런 예가 자주 있었다. 스포츠를 레저로 즐기기에는 아직도 여유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이=승패와 관계없이 잔치는 끝나면 늘 쓸쓸한 법이다. 우리는 그 뒷면도 보고 감당해야 한다. 실망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정=크게 실망하면 성숙할 기회도 생긴다. 뒷일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우리가 여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다.

정리=정재왈 기자·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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