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작은 불온했으나 美의 새 지평 열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정장을 입은 신사들 사이에서 홀로 벌거벗은 여인을 그린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미라 같은 인물이 다리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뭉크의 '절규',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을 해 전시회에 내놓은 뒤샹의 '샘'.

모두가 교과서에 나오는 미술사의 명작들이다. 하지만 세상에 발표될 당시에는 '형편없는 졸작'으로 비난받았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물의를 불러일으켰었다. 왜? 당대의 지배적인 미술사조를 거부하고 사람들이 진리로 믿고 있는 것들을 부정하는 '불온한'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그토록 물의를 빚으며 비난을 받은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세월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갔는가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우리들 대다수는 지금도 그게 왜 명작인지 잘 알지 못한다.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는 조이한씨의 책은 이같은 의문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과 인물을 포착한,주제가 있는 미술사 다큐멘터리라고 할까. 각 장의 제목은 '카라바조의 거절된 그림들-카라바조''아름답지 않은 풍경화-프리드리히''정치적이지 않은, 그러나 너무나 정치적인-마네''세상을 불안하게 한 내면의 풍경-뭉크''레디메이드(기성품)도 예술이 된다-뒤샹'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시대의 우상을 파괴한 미술가들'이라는 점이다.

카라바조는 마태를 들판에서 갓 돌아온 농부와 같은 모습으로 그리는 등 성인들의 모습과 복장을 동시대 평민처럼 묘사해 분노의 대상이 됐다. 프리드리히는 고전주의의 우아함·형식미·교훈주의를 벗어나 자기의 주관적 느낌을 담은, 낭만주의 풍경화를 제시해 비판을 자초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올랭피아' 등은 동시대인, 특히 창녀의 모습을 그대로 그림에 등장시킴으로써 물의를 빚었다. 뭉크의 '절규'는 세상을 암울하게 만드는 무정부주의자의 음험하고 위험한 그림으로 욕을 먹었다. 뒤샹은 소변기를 그대로 출품하거나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넣는 해괴한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책은 미술의 사회사와 화가의 개인사를 구체적으로 대비시켜가며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갔다는 점이 돋보인다. 원색 도판을 91점이나 싣고 친절한 해설을 곁들이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