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風이 날 교만하게 해 스스로 브레이크 못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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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14일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오전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후보 재신임 문제와 관련, "약속드렸던 것보다 좀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묻겠다"고 했다.

盧후보로서는 대선 가도에서 처음 만나는 위기다. 누가 뭐래도 그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간판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참패했고, "노무현이 앞서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을 흔들리게 했다. 盧후보는 일단 낮은 자세로 재신임 문제를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盧후보는 대국민 성명 발표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후보 등록일까지 내 스스로 더 좋은 대안(代案·대통령후보)을 찾는다는 자세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에 아쉬운 점은 없나.

"없다. 당과 후보가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고 내 리더십 문제에 많은 비판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잭 웰치 같은 거장도 제너럴 일렉트릭(GE)사를 장악하는 데 4~5년이 걸렸다."

-어제로서 민주당과 대통령의 채권·채무 관계는 끝났다는 얘기가 당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민주당 모두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민주당이야 (대통령과)끝났다고 간절하게 생각하겠지만 국민이 그렇게 보겠느냐. 다만 민주당은 이대로 가라앉지 않고 혁신을 통해 다시 일어날 것이다."

-한때 정계개편을 주장했는데.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뜨는 바람에 되는 줄 알았다. 노풍이 나를 교만하게 만든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조급하다 싶으면서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盧후보는 이 자리에서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시기는 "8·8 국회의원 재·보선 이후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당을 비상기구 성격인 선대위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선대위는 盧후보에게 인사·재정에 관한 전권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8·8 재·보선 역시 수도권과 영남 지역을 휩쓸고 있는 부패 정권 심판 분위기 속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盧후보가 선대위 체제를 재·보선 이전이 아닌 이후로 미루려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 비주류 측이 인내심을 갖고 盧후보의 수순에 동의해 줄지는 미지수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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