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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40년 - 고속도로가 미래 바꾼다 ② 영국 도로망의 척추 M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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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달 15일 오후 4시, 영국(잉글랜드) 중부 노팅엄에서 셰필드로 이어지는 ‘M1(Motorway1)’ 고속도로의 ‘웰컴 브레이크’ 휴게소.

나란히 주차된 10여 대의 대형 트럭 중에 유럽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독일·체코 등지에서 온 트럭들이었다. 독일의 유리회사 제품을 운반하는 특수트럭 운전자 폴 홀컴비(51)는 “기차로 영국까지 물건을 운반한 뒤 다시 차량으로 옮기는 것보다 배에 트럭을 싣고 와 곧바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물류비가 덜 든다”며 “이 때문에 나처럼 영국과 대륙을 오가는 트럭이 많다”고 말했다.

M1 고속도로의 노팅엄 북부 구간. M1을 달리는 대형 트럭들은 유럽 전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른다. 도로를 따라 주택가가 들어서 있다. [노팅엄=안성식 기자]

영국에서 태어나 33년간 운전을 했다는 그는 “독일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배에 트럭을 싣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 내 목적지까지 당일에 도착할 수 있다”며 “벨기에·스페인 등 서유럽은 안 가는 곳이 없다”고 소개했다.

장거리 운행 트럭이 많아 영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대부분 운전자용 숙소가 딸려 있다. 휴게소 전용 숙박 체인점까지 있다. 한 트럭 운전자는 “남부 스윈든에서 출발했다”며 “중동부의 해안도시인 헐에서 배를 이용해 네덜란드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국 전역에 뻗어있는 4000㎞의 고속도로는 섬나라와 유럽대륙을 잇는 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개통 50주년을 맞은 영국 최초의 고속도로 M1은 ‘도로망의 척추’로 불린다.

런던에서 영국 제2의 도시인 버밍엄 외곽을 지나 훅 무어까지 311㎞ 구간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M1은 10개의 주요 도로와 연결돼 있다. 준공 이듬해인 1960년 M1의 교통량은 하루 2만 대였으나 2008년엔 북쪽의 한 구간에서만 16만 대를 돌파할 정도로 통행량이 급증했다.

그레이엄 달튼 도로청장은 “공장과 상점을 연결하는 유통망에 혁신이 일어나면서 경제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등 고속도로가 반세기 동안 영국인의 삶을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고속도로는 전체 도로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에 불과하지만 도로 전체 운송량 중 승객 수송의 20%, 화물 수송의 44%를 담당할 정도로 그 비중은 절대적이다.

◆M1 따라 신도시 개발도=런던의 과밀 인구를 분산하기 위한 신도시 개발도 M1 노선을 따라 이뤄졌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70㎞ 떨어진 밀턴킨즈가 대표적이다. 67년 착공돼 30여 년에 걸쳐 개발된 이 도시에는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91년 17만 명에서 현재는 22만 명으로 늘었다. 2025년에는 3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같은 빠른 인구증가세 때문에 당초 저밀도로 개발하겠다는 취지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지난달 16일, M1을 달려 밀턴킨즈에 도착했다. 도시 내 330여 개 교차로는 꾸준한 교통 흐름을 위해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보행자와 자전거만 다니는 ‘레드웨이(Redway)’도 많이 눈에 띄었다. 고속도로와 이어지는 ‘교통 천국’을 만들어 신도시를 활성화한 것이다.

빌딩가에서 만난 회사원 질 커드슨(46)은 “25㎞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매일 M1을 이용해 출퇴근한다”며 “고속도로는 나에게는 생명줄”이라고 말했다. 영국 도로망의 동맥인 M1은 지금 변신 중이다. 실제 런던에서 리즈까지 M1을 달려봤더니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없던 갓길을 만들거나 차로를 확장하고 있었다.

도로청 관계자는 “도로가 막힐 때 갓길을 주행차로로 쓰는 시스템과 혼잡시간대에 고속도로 표지판의 제한속도를 낮춰 일정한 차량 흐름을 유지하는 기법 등을 M1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토지 매입 비용이 늘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신규 건설보다는 기존 도로 현대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영국)=김성탁 기자



에릭 샘슨 뉴캐슬대 석좌교수 “2차대전 때 독일군 신속 보급 자극받아 도로에 투자”

“고속도로 주위에 대형 수퍼마켓이 생기면서 소비 구조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 런던의 ITS(지능형 교통정보시스템) 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에릭 샘슨(사진) 뉴캐슬대 석좌교수는 고속도로의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장거리 통근이 가능해지는 등 다양한 파급효과 중에서도 소매시장의 변동이 가장 컸다는 해석이었다.

그는 “어촌에서 고속도로 인근 수퍼마켓에 수산물을 납품하고 주민들은 싸고 싱싱한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며 “자급자족에서 해외 상품까지 소비하는 단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6년 영국 교통부에서 퇴직한 샘슨 교수는 2007년 ITS 학회장을 역임했다. 1990년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유럽연합(EU) 교통정책 수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국의 고속도로 개발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영국은 1825년 최초의 대중 증기기관차를 운행했다. 또 런던 항구의 유래는 기원 후 1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항도 1933년 문을 열었다. 철도·항만에 밀려 고속도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탈리아가 고속도로를 통해 군용 물자를 빠르게 수송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고속도로 건설 뒤 어떤 영향이 있었나.

“대표적인 변화는 병원 정책이었다. 고속도로로 이동이 편해지면서 종합병원이나 지역별 특화병원 육성이 가능해졌다. 또 물류가 원활해지면서 상품 유통 구조가 바뀌었고 삶의 질도 향상됐다.”

-철도와 고속도로의 역할은 어떤 차이가 있나.

“유럽에서 배편으로 물건이 들어오면 철도로 대도시나 공장까지 운반하곤 했다. 하지만 철이나 시멘트라면 몰라도 네덜란드의 꽃 100㎏은 트럭에 실어 배로 옮긴 뒤 곧바로 도로를 달려 배달하는 게 훨씬 신선하고 빠르다. 철도는 사람 수송을 주로 하고, 생활용품은 도로로 운반하는 양상이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정부의 도로 정책 방향은.

“확장보다 기존 도로의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다. 정체 구간을 피하도록 차량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지금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 같다.”

런던=김성탁 기자

산업화 40년 - 고속도로가 미래 바꾼다 ① 미국 최초 고속도로 I-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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