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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고구려 옛 땅에 다녀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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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 옛 땅에서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북한과 통일이었다. 집안시 호텔 옆 공터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장이 선다. 인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각종 야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 모판, 금방 도살된 듯한 돼지고기, 닭고기, 팔뚝만 한 꽈배기…. 풍성한 먹을거리들이 널려 있었다. 값도 쌌다. 돼지고기 한 근에 6위안(약 1200원) 떡 한 무더기에 5위안(약 1000원), 천막 간이식당은 5위안 정도로 아침식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이렇게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저쪽은 왜 굶주려야 할까? 기후와 토양이 다르지 않은데 무엇이 강 건너편을 저렇게 황폐하게 만들었나? 압록강변에서 관광용 모터보트를 탔다. 북한 땅 코앞까지 가 보았다. 한적한 도로에 트럭 한 대가 연막소독차처럼 연기를 뿜으며 지나갔다. 목탄차였다.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여 이렇게 먹고살면 얼마나 좋을까….

압록강,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국경선은 느슨했다. 중국 쪽은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이곳을 기지로 하여 북한 주민에게 생필품 등을 지원하는 방법은 없을까? 철벽같은 휴전선을 허무는 것보다 느슨한 이곳을 이용해 우회로 통일에 접근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그러자면 중국 정부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한국 통일에 중국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와 120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변고가 생겨 대규모로 탈북자가 생길 경우 조선족 문제와 겹쳐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서간도, 북간도로 불리던 이 땅은 예부터 국경이 애매했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냐를 놓고 분규가 일어날 수도 있다. 동북공정은 이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방책이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주장은 이 지역이 예부터 중국 땅이라는 논리로 발전된다. 이를 더 확대하면 고구려의 후반부 수도였던 평양 역시 중국 땅이 될 수 있고, 이는 유사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로 이용될 수도 있다.

동북공정은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었다. 백두산 주변에는 도로, 호텔, 스키장 등 관광개발이 한창이다.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이곳 장백산을 2008년부터 중국 정부가 10대 명산의 하나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관할도 길림성에서 중앙정부로 바뀌었다.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사람이었던 이곳에 지난해부터 중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천지 꼭대기에 ‘조국이익 고우일체(祖國利益高于一切): 조국의 이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라는 붉은색 구호가 눈에 걸렸다.

그렇다고 고구려 옛 땅이 다시 우리 국토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이미 우리 조상들은 대륙을 포기하고 한반도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땅이 아니라 문화와 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정신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진취와 포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륙으로 뻗어 나갔던 ‘말달리던 선구자’의 진취성과 상무정신을 우리는 1000년 넘게 망각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난 60년 우리는 진취성을 회복했다. 대륙진출이 막히자 해양으로 뻗어가 지금의 번영을 이루었다. 포용정신이 없이는 대륙의 주인이 될 수 없다. 포용은 다름을 내세우지 않고 같음을 발견해 함께 사는 것이다. 고구려가 대륙의 수많은 이민족을 품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 넓은 땅을 통일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 대륙정신을 잃어버렸다. 과거엔 양반 상놈으로, 당파싸움으로 갈라지더니 이제는 남북 간, 여야 간, 영호남 간, 부자와 빈자 간에 분열이 확대되고 있다. 고구려 정신을 다시 살려내자.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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