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 그친 응원단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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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이 지고 있을 때도 그라운드엔 "대~한민국"이 울려퍼졌다. 동점이 되자 이번엔 "필승 코리아"가 메아리쳤다.

10일 6만1천여명을 수용하는 대구 월드컵경기장은 다시 한번 붉은 물결 일색이었다.

70대 노인에서부터 초등학생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붉은색 옷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목소리를 합쳐 "대~한민국"을 외쳤다. 상대방 응원단을 위협하거나 비난하는 불미스러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성숙한 응원문화로 일부의 우려가 기우(杞憂)에 불과했음을 입증했다.

관중은 경기장 내부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별도로 봉투까지 준비하는 세심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응원단은 경기시작 4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얼굴에 태극무늬로 페인팅을 하고,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그들의 얼굴엔 경기 자체를 즐기면 그만이라는 듯 축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서포터스인 '샘스 아미(Sam's Army)와 함께 어우러졌다.

이날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대학원생 허정식(28)씨는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며 "한국이 크게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더라도 끝까지 관전매너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모습은 이날 오전 서울에서 대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8시35분 KE1503 항공기 안에선 미국인 서포터들이 "레츠 고 유에스에이(Let's Go USA)"를 외치자 붉은 옷을 입은 한국인 승객들은 미소를 짓거나 오히려 격려의 뜻으로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보였다.

이날 아침 일찍 대구로 향하던 미국인 마이클 펠튼(40·사업)은 "일부 언론이 우려하는 것처럼 양국 응원단의 갈등이나 불미스러운 사태는 결코 없을 것"이라며 "한국은 언제나 다정한 우리의 친구"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한 외신기자는 "오늘 진정한 승자는 끝까지 인상적인 응원을 펼친 관중"이라며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자기 팀을 열심히 응원하는 이같은 세련된 태도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구=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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