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6>제102화 고쟁이를 란제리로 5.손으로 베낀 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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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당신 거기서 뭐하는 거요?"

내가 카메라에 눈을 대고 프랑스 파리 패션가의 란제리 전문점 쇼윈도를 한창 찍고 있을 때 날카로운 프랑스 말이 날아왔다. 나는 프랑스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제스처와 뉘앙스로 대충 짐작은 했다.

"보시다시피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나는 영어로 답했다.

란제리 매장의 매니저로 보이는 그 사람은 손을 가로저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란제리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사장입니다. 프랑스 란제리 제품에 관심이 많아 사진에 담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사진은 곤란합니다.디스플레이는 우리 숍의 노하우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가서 이 디스플레이를 그대로 재현하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바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그림이라도 안 되겠습니까?디스플레이 전체를 그리지는 않고 란제리 모형만 그리겠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마지 못해 허락해 주었다.

나는 아예 쇼윈도 앞에 주저앉아 수첩을 펴놓고 마네킹에 입혀진 브래지어·거들·팬티를 차례차례 그려나갔다. 우리 회사 디자이너가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는 각오로 정밀하게 그렸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벤치마킹을 한 셈이다.

국내 여성들은 '몸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서양 여성들이 브래지어나 거들과 같은 속옷으로 몸매를 가꾸고 있다는 '비밀'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란제리라는 개념도 없었다.

1960년대 중반 나는 해외로 나갔다. 국내에서는 란제리 제품은 물론이고 외국잡지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직원도 별로 많지 않았고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내가 직접 뛰는 수밖에 없었다.

이국의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일은 조금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국내에 새로운 사업을 선보인다는 자긍심으로 흥분까지 했다. 란제리 상가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동양 남자의 모습은 행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쇼윈도 앞에 털썩 주저 앉아 여자 속옷을 꼼꼼하게 수첩에 그려 넣는 이방인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 열중했다. 일을 하는 데는 부끄러움이나 자존심은 문제될 게 없었다. 일이란 신성한 것이었다. 나는 늘 태연하고 당당하게 파리 패션가를 걸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가지고 세계적인 란제리 명품회사인 프랑스 바바라(Barbara)의 베나(Gilbert Bena)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바바라는 1926년에 설립된 란제리 전문 기업으로 8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당시 내가 바바라의 사장을 찾아간 것은 우리 회사 제품을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원단을 팔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회사에서 나온 원단으로 만든 란제리 샘플입니다. 바바라에 원단을 팔고 싶습니다."

베나 사장은 샘플을 들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접견실로 나온 베나 사장은 나를 소형 무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무대에는 조금 전에 내가 내놓은 브래지어와 팬티를 모델들이 입고 있었다.

오십을 넘은 베나 사장은 모델들에게 착용감이 어떤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속옷을 만져보기도 하고 거들이나 팬티를 손가락으로 한 번씩 잡아당기며 수축성을 실험해 보기도 했다.

나는 베나 사장의 그런 행동에 당황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샘플을 모으고, 여자 속옷을 수없이 구경하고 만지며 연구했지만 여성에게 제품을 입혀 실험한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광고 모델조차 구할 수 없어 고생하는데, 프랑스에선 여성들이 저렇게 직접 입고 몸매를 뽐내다니.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베나 사장은 그 모델들이 바바라의 여사원들이라고 들려줬다. 모델을 하면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서로 나선다고 했다. 남자 사장 앞에 당당하게 속옷 모델로 서는 여사원들, 속옷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일상의 옷으로 느끼는 프랑스의 환경이 부러웠다.

정리=이종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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