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교수 초빙 '안식년' 활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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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교육 수준의 국제화를 도모하고 교수 사회의 자각을 촉구한다는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외국인 교수 초빙 정책이 최근 대학가의 화제다.

우리나라 국립대학 교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연봉을 약속하고 외국인 교수를 초빙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교육부가 목표로 하는 교육 수준의 국제화와 교수 사회의 자각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런 수준의 금전적 수혜로는 국제적 수준의 교수를 초빙할 수 없다는 데 근원적 문제가 있다. 교육부의 시행 지침에 명시된 초빙 대상은 외국 국적을 소지한 원어민이 원칙이다. 실제 연봉은 8만달러(약 1억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분야마다 다르지만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 미국 대학의 초임 평균이 약 5만~6만달러며, 첨단 학문 분야의 교수 초임 연봉은 이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이 수준의 연봉으로 우리나라에 올 학자는 아직 학문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초임 교수들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종신 교수가 아닌 계약직인 점을 감안하면 저명한 교수들이 한국의 초빙에 관심을 가질 확률은 더욱 떨어진다. 이들은 국내 대학의 열악한 인프라와 타국 정착에 따른 가족 문제, 정신적·문화적 문제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또 미국의 경우 9월 학기 리크루트에 대비한 채용이 이미 끝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어진 재원으로 3개월 동안 교육부가 생각하는 수준의 학자가 초빙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교수 사회의 자각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국립대학에서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전임강사 임용 후 최소한 11년이 지나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체로 조교수 임용 후 5~7년 후면 부교수 승진 심사가 이루어지고 심사에 통과하면 종신 교수 자격이 부여된다. 또 사회과학 분야에선 국제 학술지에 약 10편의 논문을 발표해야 종신 교수가 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으로 현재 본인이 재직하는 대학의 부교수 승진 심사에서 정년 보장을 기대하는 교수들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나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원어민이 영어로 강의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안식년제를 맞아 외국에 1년 정도 체류할 의사가 있는 각 분야의 유명 교수를 초빙해 강의를 부탁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안식년을 맞이한 각 분야 저명 교수를 초빙한다면 그들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고, 국내 교수들의 학문적 자각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첨단 학문의 지식 전파가 주요 목적이라면 초빙 교수의 수를 줄이고 더 많은 금전적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석학을 초빙해야 한다.

개별 대학에 교수 정원을 늘려 주고 국내외 대학에서 세계적 수준의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못잡고 있는 한국인 학자들에게 자리를 열어주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다. 재능 있는 많은 한국 학자들이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학문적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영어 강의를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조건 원어민을 고집하는 교육부의 이유는 논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재직 중인 대학의 상당수 교수들이 그러했듯이 고국의 대학에서 자리잡는다면 연봉이 미국에서 받는 것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해도 감수할 사람이 많다. 이미 시작된 1차 초빙은 어쩔 수 없지만 2차 초빙부터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정책 수정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교육부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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