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휘둘리는 선심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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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쇠귀에 경읽기'라더니,선거를 의식한 경제정책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표의 결집력이 크거나 출마자들의 공약과 상관관계가 큰 이익단체·업계의 요구에 영향을 받는 정책들이 여전히 많다.

최근 정부가 경제장관 간담회를 거쳐 확정한 운수업계 지원방안이 좋은 예다. 정부는 앞으로 4년간 유류세 인상으로 늘어나는 운수업계 부담액의 50%를 국고에서 보조해주기로 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운수업계 보조금을 올 하반기부터 매년 20%씩 줄여나가기로 했던 정부 정책이 8개월 만에 뒤바뀐 것이다. 이대로 가면 국고 부담이 2조7천억원 더 늘어나게 된다. 대중교통수단을 운영하는 운수업계의 경영난이나 공공성을 무조건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운수업계의 이런 상황은 어제 오늘 빚어진 일이 아니며, 정부가 8개월 전이라고 몰랐던 것도 아니다.

신용카드 남발을 막기 위해 하반기부터 거리 및 방문모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던 '5·23 신용카드 종합대책' 역시 보름이 못가 기업체 방문 모집을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방문 모집 자체를 금지한 과잉대책도 문제지만, 10만명에 이르는 카드 모집인들의 표를 의식한 정책변경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밖에도 자동차 특별소비세 인하혜택 2개월 연장, 신용협동조합 출자금 예금보호대상 계속 인정 등 특정 업체나 집단을 위한 정책이 속출하고 있다.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정부가 베푸는 이같은 '선심'의 비용은 결국 국민이 물어야 한다. 운수업계에 증액해준 보조금이나 자동차 회사에 깎아준 특소세는 결국 납세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이런 선심이 늘어날수록 재정에 구멍이 생기고, 경제에 왜곡이 발생한다. 선심성 정책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정책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현혹될 유권자는 많지 않다. 선거철이면 되풀이되는 선심성 정책의 악순환을 정부와 유권자들이 함께 끊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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