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2' 강조 광고, 효과는 '넘버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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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등임을 밝힌 대한생명 TV광고(左)와 부족한 점이 많다고 인정한 우리홈쇼핑 인쇄광고.

지난달 시작한 대한생명의 TV 광고는 "2등은 뜨겁다. 저 뜨거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형으로 시작한다. 스스로 업계 2위임을 시인한 내용이다.

이 광고를 만든 광고대행사 TBWA의 양건우 차장은 "이 광고 문안을 보여주자 대한생명 경영진은 처음에는 경악했지만 '고객이 1등이며, 고객을 위해서는 대한생명은 늘 2등'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광고란 설명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수긍했다"고 말했다.

TBWA의 조사에 따르면 이 광고가 나간 뒤 대한생명의 이미지는 나아졌다. '대한생명은 겸손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광고 이전(24%)의 갑절인 48%로 늘어났고 '고객중심의 회사'란 응답은 20%에서 52%로 뛰었다.

'우리는 1등이 아니다'라며 겸손하게 이야기하면서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광고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겸손한 광고의 유래는 1960년대 미국의 렌터카 업체인 에이비스(AVIS)가 먼저 시작했다. 당시 에이비스는 적자가 10억달러 이상 쌓일 정도로 선두업체인 허츠(Herz)와 경쟁에서 처져 있었다.

이때 손가락 두 개를 펼친 사진에 '에이비스는 업계에서 2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적은 광고를 시작했다. 광고 본문에는 '우리는 더욱 열심히 뛸 것이다. …1위의 차량처럼 기다리게 하는 일도 없다'고 썼다.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광고가 나간 지 두 달 만에 에이비스는 월별 흑자를 냈다. 에이비스의 이 광고는 그 후 광고마케팅 기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홈쇼핑은 최근 인기 탤런트 한가인이 나오는 TV와 인쇄광고를 내보냈다. 인쇄광고엔 '인정합니다. 우리홈쇼핑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완벽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 회사가 지난해 시작한 '마음에 들 때까지' 캠페인 광고의 하나다.

우리홈쇼핑 이길수 홍보팀장은 "후발주자인 우리홈쇼핑은 브랜드 인지도가 열악한 데다 경쟁사와 차별화된 이미지도 없었다"며 "광고효과 조사에서 브랜드 인지도나 호감도가 많이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LG텔레콤은 올해 '당신의 상식에서 배우겠습니다'라는 광고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고객 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차별화된 요금과 서비스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색포털의 후발 주자였던 엠파스는 99년 '야후에서 못 찾으면 엠파스'라는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당시 검색포털의 선두주자였던 야후를 1등으로 인정하되 1위에서 찾을 수 없는 내용은 엠파스에서 찾으라는 메시지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송춘식 오월커뮤니케이션 이사는 "솔직하고 겸손한 광고 메시지가 소위 '나 잘났다' 형식의 일반적인 광고 메시지보다 더 공감을 얻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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