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꿈 이룬 '골수 운동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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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 청춘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과 시민운동에 헌신해 온 40대 운동가 출신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여년 동안 사회운동을 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성(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전씨의 아버지.어머니.아내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부평=임현동 기자

23일 발표된 제46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전성(47.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씨. 그는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라며 "이제는 제도권 내에서 법률전문가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합격 소감을 밝혔다.

1977년 고려대(정외과)에 입학, 역사공부를 통해 유신독재의 해악을 깨닫게 됐던 전씨는 숨가빴던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대학 3학년이던 79년 10월 카터 미 대통령 방한 반대 시위로 구속된 이후 그는 5공, 6공 시절에도 한 차례씩 투옥되는 고통을 겪었다.

80년에는 신군부의 광주학살에 항의, 교내 시위를 주도해 휴교령을 초래한 뒤 1년간 투옥됐다. 92년에는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 사무총장으로 창당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그해 3월 민중당 소속으로 옥중출마해 낙선했다. 한국노동당 창당 작업에는 민주노동당 노회찬.조승수 의원과 최근 자유주의연대를 만든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등이 함께했다.

그는 30대엔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시민운동에 투신해 경실련 기획실장을 맡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되고 한국사회도 급속히 변화되면서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전씨는 97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차시험은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인 99년에 합격했지만 이후 내리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2001년 말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시험 공부를 중단할 뻔했다. 하지만 80년 광주학살 항의시위를 주도한 전력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 5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고 이 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공범이었던 동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상금을 받아준 것이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보상금을 받은 뒤 광주영령이 저를 후원해 준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힘을 냈습니다."

부친이 고급공무원이었던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아내 신정수(48)씨는 운동가 남편을 둔 죄로 피아노학원을 경영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신씨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신혜수 대표의 친동생으로 경실련을 만든 서경석 목사의 처제가 된다.

전씨는 "묵묵히 고생을 참아준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공익변론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문경란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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