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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최상류층의 사교파티 방불 화려한 美 고교 졸업파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 17일 오후 9시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시 더블트리 호텔의 현관.

차길이만 8m에 달하는 스트레치 리무진이 잇따라 도착하면서 턱시도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들과 가슴이 깊게 파인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의 여성들이 차에서 내린다. 붉은 카펫에 발을 내딛자 입구에선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진다.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최상류층의 사교파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들은 근처 공립고교인 JFK스쿨의 평범한 3학년 학생들로 그동안 손꼽아 기다려온 '프롬' 파티장에 막 들어서려는 참이다.

프롬은 영국의 무도회를 겸한 음악회(Promenade concert)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 미국에서는 '고3학생들이 졸업식을 앞두고 이성 친구를 동반해 벌이는 댄스파티'를 의미한다.

종교 교리상 춤을 금지하는 극소수 사립고를 제외하곤 모든 고교가 이같은 행사를 열고 있다. 일종의 성인식 성격도 띠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어른 흉내를 내는 대가는 만만찮다. "미국 고교생이 아르바이트하는 이유는 스니커스(운동화)와 프롬을 위한 돈 때문"이란 말도 있듯이 1인당 수백달러의 엄청난 비용이 문제다.

JFK고교의 레스터 롱마이어(18)는 1년 동안 방과 후에 번 돈을 이날 파티에 모두 털어넣었다. 우선 8인승짜리 리무진 대여료가 시간당 1백10달러. 다른 두쌍과 함께 빌렸지만 그래도 2백20달러(모두 6시간)가 들었다. 이밖에 턱시도와 구두를 장만하는 데 7백43달러를 지출했다. 여자친구인 크리튼 에머슨(17)은 드레스·구두·미장원비 등으로 모두 1천68달러나 썼다.

<표 참조>

에머슨양은 "남자 턱시도야 빌릴 수 있지만, 드레스는 몸에 꼭 맞아야 하고, 더구나 해마다 유행색이나 디자인이 바뀌는 데다 핸드백이나 구두도 드레스 색깔에 맞춰야 되기에 결국 비싼 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다이어블·모릴리·달리아·스칼라사 등 미국 내 주요 드레스 전문업체들은 해마다 올해의 유행색을 함께 정한 뒤(올해는 분홍색) 고교생 전문잡지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당신 엄마·언니의 프롬이 아니다' '프롬은 예비 결혼식'과 같은 광고문구도 쏟아진다. 빌려 입지 말고 사라는 메시지다.

최근 ABC 방송은 시장조사기관인 랜드 유스 폴사의 자료를 인용, 한해 평균 10대 소녀들의 패션·미용 시장규모가 3백10억달러에 달하며, 이중 절반 가까이가 프롬과 연관된 매출이라고 보도했다.

이 학교의 실라 다빈스 교장은 "학교에 따라서는 목욕시설이 딸린 리무진까지 타고 가는 학생도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흑인 등 저소득층이 많아 다른 학교보다 훨씬 검소하게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프롬파티에 대해 과소비·사치라는 비판은 드물다. 이날 턱시도 대신 평범한 양복에다 택시를 이용한 찰스 존스는 "돈문제야 자신들이 능력껏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다빈스 교장도 "무려 12년 동안 학생으로만 지내다 이제야 신사·숙녀가 되는 것인데 그 정도 지출은 불가피하지 않으냐"며 "오히려 우리는 과소비보다 교통사고를 가장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파티장에는 맥주조차 없지만(메릴랜드 음주가능 연령은 만 21세 이상) 파티가 끝난 뒤 일부 학생이 몰려다니며 밤새도록 벌이는 술파티와 음주운전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학교는 프롬이 끝나면 이들을 또 다시 학교 체육관·식당으로 데려가 부모·교사(또는 2학년생)들과 함께 새벽 네시까지 댄스파티·게임 등을 하는 '포스트 프롬'행사를 벌임으로써 학생들의 일탈 기회를 원천봉쇄하기도 한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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