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고석 화백 : 수채화에 우리 정취 담은 '山의 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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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산(山)의 화가'로 불려온 서양화가 박고석(朴古石)씨가 23일 오후 10시15분에 타계했다. 85세.

시인 고은(高銀)씨는 "명동에서 함께 자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예술을 논했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선이 굵은 화풍만큼이나 예술가로서의 기풍도 장중했다"며 애도했다.

평양에서 박종은 목사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박요섭. 성경에 나오는 인물 요셉이 그의 이름이었지만 숭실중 재학 시절 낡은 돌(古石)이란 예명을 직접 지었다. 숭실중 졸업반 때 부친이 큰형을 데리고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자 비뚤어진 사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고인은 『박고석의 그림과 글』(열화당·90년)에서 "방종한 생활 속에서도 기자묘·능라도 등에서 화구를 버텨놓고 그림에 열중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니혼(日本)대 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1943년 도쿄 사쿠하치(尺八)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해방 후 월남해 대광고 교사를 거쳐 홍익대·중앙대·세종대 교수를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도 현대한국회화전(51년)에 참가했고 52년 르네상스 다방에서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 소속 작가인 이봉상·손응성·한묵·이중섭씨 등과 '구조전' 창립 동인전을 열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화랑이 거의 없다시피 해 다방이나 선술집에서 개인전을 여는 게 상례였다. 고인의 국내 첫 개인전도 52년 부산 휘가로 다방에서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범일동 풍경'(52년)은 피란민의 지난한 삶의 모습을 통해 한국전쟁의 참혹상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고물시계 장수의 모습은 고인의 자화상이다.

60년대 후반 안국동에 있던 고인의 화실엔 시인 김수영(金水瑛)·구상(具常), 소설가 최인훈(崔仁勳), 첼리스트 고 전봉초(全鳳楚)씨가 드나들곤 했다. 신문 삽화료만 받아도 친구들에게 술을 샀고 화실에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 대신 술을 권했다.

고인은 틈만 나면 설악산·한라산 등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면서 스케치에 몰두했다. 74년 개인전을 20년 만에 열어 도봉산 ·백암산 등을 수채화로 그린 '산 시리즈'를 선보였다. '산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다. 90년 현대화랑에서 '산의 시대' 개인전을 연 뒤에는 강원도 설악동에 화실을 마련해 부인 김순자(건축가인 고 김수근씨의 누이)씨와 함께 기거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02-3410-6914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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