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끊겼는데 건보료 2배 … 베이비부머 ‘퇴직 2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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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김모(55)씨는 2006년 6월 하이닉스반도체에서 퇴직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퇴직금을 다 까먹었다. 김씨는 아파트 관리비와 식료품비 등을 감당하기 힘들어 만 55세가 되는 시점인 지난달에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했다. 60세에 받을 연금을 30% 깎아 당겨 받는 제도다. 김씨가 이렇게 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7만원이 넘는 건강보험료 때문이다. 김씨는 직장에 다닐 때 매달 7만~8만원(직장 부담분 제외)의 보험료를 냈는데 지금은 소득이 한 푼도 없는데도 두 배가량 납부한다. 김씨는 “소득이 없어졌는데도 보험료가 올라가는 게 말이 되느냐. 너무 부담스럽다”며 “정 안 되면 집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건강보험료가 올해 퇴직을 시작한 1955년생 베이비부머(55~63년생, 712만 명)를 울리고 있다. 돈을 벌던 직장인 시절보다 보험료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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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직장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달라서다. 직장인은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물리지만 지역은 소득·재산·자동차·생활수준 등 네 가지에 보험료를 매긴다. 소득이 없어도 서울에 110㎡(약 33평)짜리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월 보험료가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김씨의 보험료는 재산 항목이 약 9만5000원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생활수준이 5만6000여원이다.

생활수준 보험료에도 문제가 있다. 소득이 없거나 연 500만원이 안 되면 재산·자동차·연령 등의 생활수준을 따져 보험료를 추가한다. 결과적으로 재산·자동차보험료가 이중 부과되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 1~4월 퇴직한 55세 직장인은 2만7269명. 이 중 48.8%인 1만3310명은 재취업에 성공했다. 이 가운데 5199명은 직장인 자녀의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안 낸다. 문제는 지역가입자가 된 8398명(30.8%)인데 이 중 상당수가 김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55년생 퇴직자들은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보험료가 대부분 올라간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선임연구위원은 “소득이 없는 퇴직자에게 보험료를 더 물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55년생 퇴직자들은 국민연금에도 문제가 생긴다. 소득이 없어지면서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올 1~4월 이 연금을 신청한 55세 퇴직자는 5539명이다(국민연금공단 집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늘었다. 국민연금은 원래 만 60세가 돼야 받는데 소득이 없거나 월 179만원이 안 되면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60세에 받을 연금에서 30%가 깎이고 평생 이 금액을 연금으로 받는다. 이 때문에 월 소득이 200만원인 사람이 20년 가입해 기대수명(남자 80세, 여자 85세)까지 살 경우 조기노령연금의 총수령액이 적어진다. 남자는 2360만원, 여자는 3780만원 적다.

◆건보료 부과체계 다른 이유는=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 방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재산 보험료 최저액은 3436원, 최고는 23만원(재산과표 30억원 초과)이다. 이렇게 복잡한 이유는 낮은 소득 파악률 때문이다. 소득자료가 파악된 가입자가 44%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소득만으로 보험료를 매길 수 없어 재산과 자동차를 동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득이 실제로 한 푼도 없는 사람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직장인의 재산이나 임대·금융소득에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아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반대로 직장인들은 “우리가 봉이냐”고 반박한다. 근로소득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자영업자는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0년 직장과 지역건강보험을 통합할 당시 이런 문제가 제기됐었다. 보험료 부과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부과체계를 단일화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55세 퇴직자의 보험료가 올라가는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부과 방식이 달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최병호 연구위원은 “퇴직자의 연금에 보험료를 물리되 재산·자동차보험료를 크게 낮춰 건보료 총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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