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시장, 고가제품이 회복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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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6월 초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 본점에서 열린 와인 할인 행사. [현대백화점 제공]

현대백화점은 최근 올 상반기 와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와인 매니어층이 즐겨 찾는 10만원대 이상 고가 와인 매출이 8%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저가 와인 판매량은 오히려 4~5%가량 줄었다. 현대백화점 측은 “와인시장은 전체적으로 정체된 상황이지만,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서 고가 제품이 잘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10만~30만원대의 고가 와인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와인시장을 보면 거시 경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와인은 쌀이나 돼지고기 같은 필수재와는 달리 사치재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경기 흐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1만원대 이하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것까지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소득 계층별로 다른 소비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역할도 한다.

올해 국내 와인시장은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보이고 있지만 고가 제품군은 성장세가 뚜렷하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올 상반기 샤토 탈보 등 10만원을 넘어서는 고가 와인의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졌다.

와인 수입업체인 LG상사트윈와인도 알레그리니·세테퐁티 같은 이탈리아산 중·고가 브랜드 와인 매출이 10~15% 상승했다. 반면 대형마트 등 2만~3만원대 이하의 저렴한 와인을 주로 파는 업체들은 올 상반기에만 5~10% 매출 감소를 겪었다. 이런 와인시장의 기류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는 차차 회복 중인 반면 서민층은 경기 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분석과도 맥을 같이한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중저가 와인시장이 위축된 탓도 있다.

와인 수입 통계에서도 이런 시장 특징을 읽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까지 국내 와인 수입금액은 4454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가량 줄었다. 그러나 수입물량은 965만9000kg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정도 오히려 늘어났다.

업계에선 수입 물량이 8%나 늘었다는 점에 대해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면서 기존 와인 재고량이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량이 늘었음에도 수입금액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색깔 있는 막걸리나 각종 칵테일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저가 와인 수입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마다 고가 제품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LG상사트윈와인은 중·고가의 와인을 즐겨 찾는 고객에게만 선별적으로 우편물을 발송하거나 VIP 고객용 할인쿠폰을 발급하고 있다.

와인나라 이철형 대표는 “우리 회사의 경우 올 들어 고객 1인당 와인 구매금액은 3만8000원 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0원가량 늘어나는 등 중산층 이상의 소비 회복세가 뚜렷하다”며 “경기 양극화처럼 와인시장도 서민과 중산층 이상으로 분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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