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보다 反독재 투쟁" 아버지 겨눈 '저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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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당신도 한국사람이니까 잘 알 거 아닙니까.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준다고 독재체제가 어디 꿈쩍이나 합니까. 또 북한주민 인권이 나아지나요. 쿠바도 똑같아요. 카터는 미국이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고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 소식이 미 언론에 크게 보도된 지난 15일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알리나 페르난데스(사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카터가 쿠바의 민주화도 촉구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실속 없는 미디어 서커스(media circus)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는 "독재정권 쿠바를 다루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강하게 몰아붙여야 한다"며 부시편을 들었다.

46세의 쿠바 여인 페르난데스는 살아있는 세계 최장기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가장 가슴 아픈 '저격수'다. 카스트로가 한 때 사랑했던 여인에게서 낳은 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쿠바 망명객들이 몰려 사는 미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라디오 방송국 WQBA의 시사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카스트로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수많은 망명 논객들 중에서도 그녀는 가장 신랄한 축에 속한다. 그녀가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토크쇼 '심플레멘테 알리나(Simplemente Alina)'는 '카스트로 독재 심판장'이다.그녀는 핏줄을 무시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나는 그의 딸이기 이전에 쿠바인이고 쿠바 여인이며 쿠바 망명객입니다.나는 일반 쿠바사람들처럼 독재에 분노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쿠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3년 전,청년 혁명가 카스트로는 동지인 나탈리아 레뷔엘타에게서 알리나를 낳았다. 하지만 알리나의 어머니는 정식부인이 아니라 정부(情婦)로 남아야 했다. 알리나가 어렸을 때 턱수염을 기른 키 큰 아저씨가 가끔 집에 찾아왔다. 열살 때 어머니는 "이 아저씨가 네 아버지이며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고 말해주었다.

카스트로는 때론 모녀에게 영화(榮華)를 선사하고, 때론 그들을 무관심 속에 방치했다. 알리나는 최고권력자의 딸이라는 신분과 정보기관의 감시라는 이중구조 속에서 성장했다.

페르난데스는 곧 아버지의 독재 하에서 신음하는 이웃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녀는 1993년 위장여행으로 쿠바를 탈출했다. 카스트로 권력의 그늘을 빠져나온 페르난데스는 쿠바 반체제운동의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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