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시인 기생' 김부용 알리기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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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김성열씨가 광덕사 인근의 김부용 묘 앞에서 최근 펴낸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부용은 황진이.이매창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기(시에 능한 기생)였지만 요즘 사람이 읽기 어려운 한시만을 남겨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그래서 30년간 그를 알리는데 매달렸죠."

충남 천안향토사연구소 김성열(64)소장은 최근 부용의 시와 관련 논문.소설 등을 모아 '조선조 여류시인-운초 김부용의 생애와 문학'(천안향토사연구소.비매품)을 펴냈다.

김 소장은 1974년 '명기열전-김부용전'을 신문에 연재하던 소설가 고 정비석씨가 천안 광덕사 인근에서 부용의 묘를 찾아낸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서점을 경영하던 그는 문인협회 천안지부와 함께 묘비를 세우고 무너진 봉분을 수습했다. 그 뒤 해마다 4월이면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93년엔 부용의 시 360수 가운데 75수를 골라 번역 시집(허경진 옮김.평민사)도 냈다.

김 소장에 따르면 부용은 평남 성천 출신으로 1850년대 40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0대 후반에 자신보다 50세가량 많았던 전 예조판서 김이양(1755~1845)을 만난 부용은 시를 통해 사랑을 나누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 '부용 상사곡'도 이런 흠모의 정을 담고 있다. 김 소장은 "부용의 한시는 '한 글자 두 줄'로 시작해 한 자씩을 더해가며 사랑의 애절함을 조형물 쌓듯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부용의 유골은 그의 유언대로 김이양의 묘 가까이 묻혔다고 김 소장은 주장한다. 그는 "동네 촌로들과 묘를 정비할 당시 상류층이나 쓰던 고급 옻칠 관을 봤고, 수습된 유골이 키 165cm정도의 여자인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충남도와 천안시는 "이 묘가 부용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며 지방기념물 지정을 미루고 있다.

김 소장은 "묘 옆에 아담한 시비를 세우고 안내판도 말끔하게 정비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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