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오픈골프 20언더 깜짝 우승 이 승 용 - "큰물서 뛰겠다" 당찬 19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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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제2의 최경주는?

골프 불모지라고도 할 수 있는 완도 출신 최경주(32·슈페리어)가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우승을 일궈낸 '아메리칸 드림'에 골프팬들은 그의 뒤를 이을 유망주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 전례를 볼 때 자신감이 중요한 스포츠계에서 선구자가 나타나면 반드시 후계자들이 줄줄이 출현했다. 야구에서는 1994년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가 LA 다저스에 입단, 메이저리거가 된 뒤부터 김선우·조진호·봉중근 등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또 98년 박세리(25·삼성전자)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첫승을 거둔 이듬해부터 김미현(25·KTF)·박지은(23·이화여대)·박희정(22·39쇼핑)이 줄지어 스타대열에 합류했던 것처럼 남자골프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섰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끝난 제21회 매경 LG패션오픈골프대회에서 4라운드 합계 20언더파 2백68타로 우승한 이승용(19)을 보고 나면 누가 최경주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이선수가 세운 20언더파는 99년 최광수가 세운 대회 최저타우승기록(17언더파)을 무려 3타나 깬 것이었다. 또 아시안프로골프협회(APGA) 투어를 겸한 이 대회에서 아마추어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1회대회인 1982년 김주헌(재일동포·당시 21세) 이후 20년 만의 경사였다.

#힘도 있고 기량도 좋다.

골프는 공을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보내는 운동이다. 뉴질랜드 국가대표인 이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2백70m를 정확히 날리는 힘찬 드라이버샷과 노련한 프로들 못지 않은 정교한 아이언샷 및 퍼트로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그는 1백60m의 거리를 7번 아이언으로 온그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1m80㎝·88㎏의 체격이지만 조금도 뚱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근육으로 다져진 체격이기 때문이다.

#구력도 만만치 않다.

어느 스포츠보다도 감각이 중요한 골프는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만 다섯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온 이선수는 그때부터 클럽을 잡았고 13세 때 뉴질랜드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이선수는 "처음에는 어머니와 집에만 있었지만 아버지·할아버지 등 온가족이 골프를 즐겨 나도 우연히 클럽을 잡았다. 그런데 골프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비록 얼굴에 여드름이 듬성 듬성 나 있는 19세 청년이지만 구력은 14년이나 된다.

골프 교습가들은 "골프는 머리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하루 경기시간이 네 시간이 넘는 골프코스에서는 주의할 것도 많고 어느 운동보다 긴급상황이 많이 발생해서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승용은 2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몰아치고 난 뒤 "우승하려면 20언더파는 쳐야할 것"이라고 했다. 주위에서 '한번 잘 치고 나더니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지만 이승용은 보란 듯 자신의 예상을 적중시켰다.

그는 처음 서 보는 낯선 코스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우승이 확정된 뒤 기자회견장에서도 이승용은 자신이 버디·보기를 기록한 홀을 한치의 오차 없이 사용한 클럽과 공의 위치를 복기해 냈다.

외국에서 자랐지만 그의 한국말 솜씨는 완벽하다. 지난해 12월 뉴질랜드 셔리고교를 졸업한 이승용은 이미 미국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와 애리조나주립대 등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아 놓았다.

이승용은 "프로로 전향할 것인지,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는 몇개 대회를 더 뛰어보고 결정하겠다"며 "어니 엘스 같은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5월의 신록처럼 이승용의 앞날은 푸르기만 하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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