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문화 벽 뛰어넘는 '축구공의 평등'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경제 월드컵을 넘어 문화 월드컵으로….

월드컵 축구에 대한 국민적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월드컵을 단지 경제적 도약의 계기로만 보지 말고 한국 사회가 문화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최장집 교수)가 "2002년 월드컵과 한국사회의 재도약"이란 주제로 15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할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폐쇄형 사회를 개방형 사회로 바꾸는 데 기여하였다면, 2002년 월드컵은 개방적 가치를 우리 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한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교수가 '2002년 월드컵, 의식구조의 변화와 외국문화의 수용'이란 논문에서 밝힌 주장이다. "한국민은 강한 배타적 문화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송교수는 "이러한 배타성이 한민족을 단결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해왔지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합리적 소통행위의 능력을 축소시켜 왔다"면서 "세계시민과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월드컵 행사는 이를 극복할 좋은 계기"라고 밝혔다.

연구소측이 언론에 미리 배포한 자료를 보면 이번 심포지엄의 초점은 "월드컵 대회는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가져야 할 비전인 평화공동체와 민주발전을 추동하는 제전이 되어야 한다"는 데로 모아진다. 특히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은 대회로 이번 심포지엄에서 주목된다.

"축구는 본래 단체 경기이고 소란스러운 응원과 관전에서 나오는 흥분 등이 핵심적 성격"이라고 말하는 정준성 전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연구원은 "프랑스는 축구가 가진 집단적 흥분의 성격을 충분히 살려 월드컵을 현대판 축제로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생활 신조인 '사는 기쁨'이 월드컵을 통해 현실화되어 축제와 놀이의 한마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씨가 볼 때 "축제는 인종·승패·문화의 차이를 없애는 계기"이다. 그런 점에서 "마케팅이나 생활문화의 단속만으로는 월드컵을 훌륭하게 치를 수 없다"고 지적한 정씨는 "경기장 주변에 포장마차나 한국 특유의 역술인·노점상·사물놀이패 등을 일정한 자격 심사를 거쳐 유치하는 것이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데 오히려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심포지엄의 기조발제를 맡은 최장집 교수는 "월드컵은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역동성과 에너지, 열정과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분출을 가능케 한다"면서 "현실의 정치와 사회, 현실의 국가와 민주주의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적 보편주의를 축구라는 스포츠가 창출해내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월드컵과 관련한 시민 의식조사를 보면 시민 대다수(89%)가 "월드컵이 한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치분야에서 지역발전과 지방분권화의 활성화가 촉진되고, 경제분야에서는 문화관광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원봉사 및 공동체의식(29%), 시민질서의식(25%),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 자세(18%)도 증진될 것으로 예견됐다.

이밖에 '월드컵과 시민사회'에 주목한 이종오(계명대 사회학)교수는 "월드컵은 한국사회가 외부로부터 다양성과 상대성을 체험하는 긍정적 자극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와의 만남과 이해를 통한 보편적 세계시민의 가능성 타진, 그리고 이를 통한 개방적 시민사회로의 승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혁백(고려대 정외과)교수는 "이번 월드컵이 단일민족의 신화에 젖어 있던 한국인들에게 세계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포용적 민주주의를 국제적 차원에서 학습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에는 일반인의 참여도 가능하다. 02-3290-1601.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