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기업분석 보고서 '뒷문'으로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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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애널리스트들의 종목 보고서가 기관투자가와 큰 손 등 특수 고객에게만 은밀하게 먼저 제공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보고서를 늦게 접한 일반 투자자의 피해가 예상된다.

증권업감독규정에는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종목 분석 보고서 내용을 일반에 공표하기 앞서 특수 고객에게 먼저 알렸다면 반드시 이 사실을 보고서에 명시하도록 돼있다. 오래 된 정보를 최신 정보로 착각해 이를 믿고 투자에 나서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껏 이를 지킨 애널리스트는 거의 없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규정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력한 국내외 증권사가 발표한 종목 분석 보고서는 즉각 증시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증시를 곤두박질하게 한 'UBS워버그 증권 쇼크'가 대표적 사례다.이 증권사가 지수비중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와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자 삼성전자는 폭락하고,종합지수는 2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본지5월 11일자 18면>

◇실태=A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이나 목표주가를 낮추면 그 회사는 물론 주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는 게 다반사"라며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주요 고객에게는 비밀리에 보고서를 건넨다"고 털어놓았다.

또 발빠른 펀드매니저들은 애널리스트가 다 만들지도 않은 보고서 내용을 전화를 통해 입수하고는 즉시 매매에 나서곤 한다. 물론 애널리스트는 이런 사실을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돌고 돌아 대부분 나중에 일반 투자자들의 손에도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를 뒤늦게 입수한 일반 투자자는 자신이 입수한 보고서가 한 물 간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즉 최신 보고서를 입수한 줄 알고 해당 종목을 샀다가는 큰 손들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다.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해당 종목을 사들인 큰 손들은 일반인이 달려들면 매도에 나서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의 연봉과 명성은 펀드매니저의 평가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즉 펀드매니저가 어떤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라 주식을 많이 매매함에 따라 해당 증권사의 위탁수수료 수입이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작성한 최신 보고서를 제일 먼저 영향력이 큰 펀드매니저에게 보내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애널리스트의 항변=애널리스트들은 펀드매니저 등 증권사 수입에 기여하는 특수 고객에게 정보를 먼저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보고서를 매매 주문을 많이 내주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게 경제논리에도 맞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종목 분석 보고서는 철저하게 특수 고객에게만 제공된다. 이런 자료를 받아보고 해석할 만한 능력이 있는 투자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또 이들 특수 고객은 자료에 대한 대가로 해당 증권사에 매매 주문을 내준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매매주문을 주지 않는 투자자에게는 보고서를 일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가 작성한 종목 분석 보고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다. 증권사 계좌를 갖고 있는 일반 투자자는 물론 해당 증권사 계좌를 갖고있지 않는 일반인도 이런 자료에 따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뒤늦은 보고서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사전 제공 여부를 고지하고,종목 분석 보고서를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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