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재빨리 올린 은행들 예금금리 인상은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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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출금리 인상은 재빨리, 예금금리 인상은 천천히…."

지난 7일 한국은행이 콜(은행간 초단기 자금거래)금리를 인상했음에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리는 이미 올랐거나 올릴 움직임을 보여 고객 손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빛·서울은행은 지난주 신용대출 기준금리를 0.18~0.2%포인트 올려 콜금리 인상을 즉각 반영했다.

나머지 은행은 일단 지켜보자는 반응이다. 특히 금리 결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민은행이 "당분간 시장금리를 주시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금리를 조정할 이유가 없다"고 못박고 있어 다른 은행도 당장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가계대출 금리는 대부분 시장금리에 연동돼 이미 저절로 올라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은 양도성예금증서(CD·91일물) 유통수익률에 연동되도록 금리체계가 짜여 있어 금리가 슬금슬금 올랐다.

콜금리 동향에 민감한 CD수익률은 콜금리가 오르기 직전인 지난 6일 연 4.69%에서 10일에는 4.81%로 0.12%포인트 올랐고, 이에 따라 각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이자도 0.02~0.12%포인트 오른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5영업일의 CD금리를 평균해서 반영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시장 금리를 수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같이 콜금리 인상 영향으로 대출금리는 올라가고 있지만 예금금리 인상을 검토하는 은행은 한 곳도 없다는 데 있다. 이 참에 예대마진을 충분히 확보하자는 계산 아래 예금금리 인상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설정비를 면제하고도 예대마진이 1% 수준까지 떨어져 있다"며 "적정 예대마진 확보를 위해 수신금리는 당분간 손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지난해 7~9월 한은이 콜금리를 계속 내릴 때 각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를 외면하다 10월에야 비로소 내리기 시작했었다"며 "조달 금리가 떨어졌을 때는 대출금리 인하를 외면하던 은행들이 이번엔 소폭 오르자 너도 나도 대출금리 올리기에 나서는 것을 보면 담합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안진걸 간사는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대출금리만 올릴 경우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은행들의 예대금리 조정을 지켜본 뒤 대출금리만 올리고 예금금리는 안올린 곳에 대해선 조만간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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