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디지털 문화유산 <중> 일본 DNP ‘루브르 뮤지엄 랩’ 프로젝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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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 일본에도 있다. 도쿄 긴자 거리 DNP(대일본인쇄) 본사 1층에선 2007년부터 ‘루브르-DNP 뮤지엄 랩’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장치로 관객과 박물관을 연결하는 실험이다. 올 가을 2차 개관을 앞두고 지금은 잠시 휴관 중이다. 그러나 180인치 스크린이 적용된 극장, 로비와 본사 곳곳에 전시된 여러 체험 코너를 통해 그 면모를 어림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 대일본인쇄(DNP)는 미국 보스턴 파인아트 뮤지엄이 소장한 12세기 일본의 두루마리 그림 ‘길비대신입당회권’을 8폭 디지털병풍에 담았다. [DNP 제공]

로비 한가운데 모니터에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그림 ‘토끼와 함께 있는 성모’가 떠 있다. 적외선 카메라가 눈동자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아이 트래킹’ 시스템이 적용된 장치다. 의자에 앉아 1분쯤 작품을 감상하고 나니 화면에 관객의 시선 흐름이 표시된다. 잠시 후 학예사의 시선이 화면에 나타난다. 전문가와 일반 관객의 그림을 보는 시각차가 확인되는 것이다. 이 회사 코즈 후나하시 사무국장은 “작품 속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느냐는 작품을 둘러싼 정보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좌우된다”며 “한 작품을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전시기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1800년 전 이집트 여인의 초상화가 떠 있는 스크린을 터치해 작품을 확대해 보는 관람객. [DNP 제공]

DNP는 2007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여섯 차례 전시를 개편했다. 티치아노 프로젝트의 경우 실제 유물은 그림 단 한 점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로 작품세계를 확장시켰다. 전시실 벽면에는 프로젝터 3개로 16세기 비엔나의 풍경이 담긴 화면을 쐈다. 관람객에게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다. 멀티미디어 전시실에서는 티치아노의 작품을 중심으로 베네치아의 미술을 설명하는 코너가 마련됐다. 작품을 3D 입체영상으로 구현해 관람객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원근감과 명암 등을 실감하도록 했다. 작가의 일생과 작품 변천사를 담아둔 멀티미디어 책, 손으로 스크린을 터치하면 작품의 일부를 확대해 보여주는 패널 등도 적용했다. 전용극장에서는 디지털 4K(풀 HD의 4배 화질)로 재현한 작품을 틀어준다.

전용 단말기를 이용한 ‘음성 안내 시스템’도 도입했다. DNP 기술개발실 히사나가 이치로는 “관람객이 단말기를 들고 유물 앞에 서면 IC(집적회로)태그가 자동으로 유물을 인식해 사전에 등록된 정보를 들려준다”며 “도자기류의 전시물은 AR(증강현실) 기술을 이용, 평소 볼 수 없는 뒷면까지 360도 입체 영상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물관 학예사들은 유물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숨은 색깔을 찾아내고 빛의 방향이나 물감의 두께까지 알아낸다. 이를 멀티미디어 전시에 정확히 적용해 관람객의 이해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 전시기법은 지난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특별전 형태로 소개되기도 했다.

DNP는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한 토판인쇄(본지 19일자 25면)와 함께 일본의 2대 인쇄회사로 출발했다. 인쇄기술을 IT분야에 적용하면서 사업을 다각화한 것도 공통적이다. 기업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문화사업에 뛰어들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영국박물관, 프랑스 기메 미술관과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등과도 협약을 맺어 주요 유물을 4K 초고화질로 디지털화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옷을 첨단 인쇄기술을 활용해 종이로 복제하고, 일본 사찰의 장지문에 붙은 옛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 대체용 복제본을 만들기도 했다. 코즈 후나하시 사무국장은 “디지털화한 작품의 화상을 출판·DMB·스마트폰 등 여러 매체에 제공해 수익을 내고, ‘루브르-DNP 랩’을 멀티미디어 기술을 홍보하는 쇼룸으로 활용하는 등 문화도 살리고 사업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국립정책연구대학원 가키우치 에미코 교수는 “일본기업들은 문화유산 보존에 적극 기여하고 있다. DNP는 문화유산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박물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도쿄=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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