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 횡성·양평 충혼탑·전적비 50㎞ 달려 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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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영광입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대사가 28일 강원도 횡성 횡성중고의 학도병 충혼탑에 새겨진 학도병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성 기자]

28일 오전 9시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횡성중고 운동장에 있는 ‘6·25 참전 학도병 순국 충혼탑’. 캐슬린 스티븐스(56·한국 이름 심은경) 미국 대사가 유창한 한국말로 학도병 출신 참전용사 3명과 인사를 나눴다. 노(老) 학도병들은 “우리가 더 영광”이라며 스티븐스 대사를 맞았다.

이날 스티븐스 대사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이곳을 찾았다. 강원도 횡성, 경기도 양평에 있는 두 곳의 한국전쟁 기념탑을 잇달아 참배하는 일정이다. 횡성에서 양평까지 약 50km를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학도병 충혼탑은 6·25전쟁에 자원해 참전했던 횡성농업중학교(현재의 횡성중고) 학도병 전사자 13명과 생존자 62명을 기리기 위한 탑이다. 참전 학도병 김현태(78) 씨는 “당시 북한군이 개전 사흘 만에 이곳까지 진격해 내려오면서 우리는 교복을 입은 채로 전쟁터에 나갔다”고 회고했다.

그러자 스티븐스 대사는 “치열하고 끔찍했던 전투에서 여러분이 큰 희생을 했다. 그 희생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초석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학생들이 전쟁터에서 죽기도 했다니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9시 20분, 참배를 마친 스티븐스 대사와 대사관 직원 10여 명은 각자의 자전거에 올라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자전거 매니어로 잘 알려진 스티븐스 대사는 종종 직원들과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그러나 자전거 팬에게도 시골 길 50km를 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6·25전쟁 뒤 한국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의 땀과 희생이 녹아들어야 했을까요. 그 결과물을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스티븐스 대사가 직접 행사 의도를 설명했다.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대사 일행은 푸른 시골 길을 달리며 많은 사람과 마주쳤다. 논밭에 있던 농민들은 대사 일행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국도변 가정집 앞에선 주인 아낙의 권유로 집 앞 평상에서 15분간 쉬어가기도 했다. 대사가 “(이 집) 밤나무가 참 예뻐요”라고 말하자 주인 아낙이 “어머나! 미국 대사 아줌마가 한국말을 잘하네”라고 답해 웃음이 터졌다.

이날 대사 일행이 움직인 경로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강원도 횡성에서 벌어졌던 ‘횡성 전투’(1951년 2월 5~18일)에선 유엔군이 국군 1만2700여 명과 미군 2500여 명 등 1만5200여 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내면서 중공군의 남하를 필사적으로 저지한 곳이다.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51년 2월 13~15일)’는 유엔군이 중공군 개입 이래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였다.

이 전투는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떨어졌던 유엔군이 자신감을 회복해 서울과 38도선 일대까지 탈환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후 2시 30분 대사 일행은 양평의 ‘지평리 지구 전투전적비’에 도착했다. 온통 땀으로 젖은 대사는 인근 사우나에서 간단한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공식 석상에 섰다. 20 기계화보병사단 장병 30여 명과 김선교 양평 군수 등이 대사 일행을 맞았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아들과 딸을 보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국인은 더 이상 모르는 사람, 만나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미 양국이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참배를 마친 대사는 춘천의 한 영화관으로 향했다.한국 대학생, 미국인 영어 교사들과 영화를 관람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사가 이날 본 영화 역시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포화 속으로’였다.

횡성·양평=송지혜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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