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脫黨이 던진 문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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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자신이 창당하고 이끌어 온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다고 발표했다. 金대통령의 탈당선언을 접하면서 대통령제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자인 미국 예일대의 후안 린츠(Linz) 교수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5년주기 과거 단절 목청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하에서 성장한 그는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게 마련인 대통령제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제기하면서 대통령제 정부의 약점들 중에서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내각제와 달리 임기를 보장받는 대통령에게 임기 중 국정운영에 대해 심각하게 책임을 묻기 어렵고 또한 임기가 끝난 후에는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길이 막연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번 金대통령의 탈당이 국정에 전념하고 대선을 공정관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서실장이 대신 발표한 金대통령의 탈당을 전해 들으면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의 측면에서 우리의 대통령제에 대해 깊은 우려와 걱정을 하게 된다. 첫째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 반복되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탈당이 어느 새 우리 정치의 특징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단절의 정치',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 규명의 실종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金대통령의 경우에는 탈당의 시기가 대폭 당겨졌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노태우(泰愚)·김영삼(金泳三) 두 전직 대통령의 탈당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5년 전, 10년 전에도 현직 대통령들은 권력 실세들의 부정부패, 그에 따른 국정마비를 겪으며 임기 마지막 해에 자신이 이끌어 온 정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이에 이어서 여당의 대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현직 대통령이 수행해 온 국정운영을 비판하면서 차별화를 꾀하였다. 야당 후보는 물론이고 여당 후보까지도 현직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강력히 비판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과거의 여당 후보였던 김영삼, 이회창 후보는 여당의 당명을 바꾸면서까지 지나간 5년을 부정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였다.

대통령의 탈당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단절의 정치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폐해를 불러왔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선거운동과정은 여야간 정책의 경연장이면서 동시에 현 정부에 대한 평가의 마당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여당후보마저 지난 과거를 부정함으로써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책임규명의 기회는 실종되는 것이다. 선거의 해 1년이 현 정부의 공과 를 합리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는 기회가 되기보다는 소모적인 한풀이의 장으로 변질돼 왔던 것이다. 또한 집권 여당의 해체와 새로운 정당의 출범이 반복되면서 정당정치는 대선 후보와 대통령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안정적인 제도화로부터 멀어져갔다.

대통령의 탈당이 제기하는 두번째의 문제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다. 즉 우리 대통령의 임기는 지극히 대조적인 양상을 띠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된다. 임기 전반기에는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제왕적 대통령의 강력한 통치가 이어지지만, 임기 후반기에는 심각한 권력누수에 빠져버린 레임덕 대통령과 통치의 실종이 지속되는 것이다.

들추기보다 대책 강구를

이처럼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혼란을 막기 위한 개혁의 핵심은 대통령이 여당과의 관계를 보다 느슨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공천권의 민주화, 대통령의 총재직 이양 등을 통해 덜 강력한 대통령이 된다면 그만큼 후반기의 권력누수도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번 金대통령의 탈당은 우리의 대통령제가 아직도 많은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그와 함께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대한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첫째, 여야의 후보들은 올해의 대선 과정에서 단순한 단절과 한풀이의 정치를 벗어나 현정부의 공과 실을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둘째, 대선후보들은 과거의 문제를 들춰내고 비판하는 데 급급한 네거티브 캠페인보다는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개혁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선거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양김 시대 이후의 정치에 대해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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