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환자 진료 중단'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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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품위있는 죽음의 인정이냐, 진료를 포기하는 살인 행위냐. 사망이 임박한 환자의 진료를 중단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학회 모임인 대한의학회는 지난 3일 '임종환자 의료윤리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의협이 발표한 의사윤리지침 중 임종환자 부문을 구체화한 초안이다.

지침에는 경우에 따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행 형법·의료법과 배치되는 부분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의료계는 이를 바탕으로 조만간 최종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윤리학계는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뭘 담고 있나=지난해 11월 의사윤리지침이 규정했던 회복불능 환자를 이번 세부지침에서 임종환자로 구체화했다.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적극적인 치료에도 반응을 나타내지 않아 사망이 임박했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임종환자로 규정한 것이다.

의료진이 환자의 임종을 예상할 수 있을 때 환자나 가족들이 퇴원을 요구하면 이를 존중해 집에서 임종을 맞도록 했다. 또 미국 의사협회 윤리지침과 같이 환자나 그 가족들이 명백히 의미없는 치료를 해 달라고 요구하면 의사는 이를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뇌사(腦死)자를 계속 치료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뇌사로 판정되면 치료 중단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환자의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위한 심폐소생술을 거절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밖에 사망이 임박했거나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처럼 집중적인 치료가 도움이 안되는 환자들이 중환자실 입실을 요구할 때 이를 거절하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논쟁·반발=1996년 가족의 요구로 환자를 퇴원시킨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가 최근 2심에서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임종환자의 퇴원을 허용한 이번 세부지침 규정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또 현행 법은 장기이식을 전제로만 뇌사를 인정하고 있는 데 비해 의협은 광범위하게 뇌사를 인정하는 듯한 규정을 만들었다.

생명안전윤리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시민단체나 종교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의사가 지침이나 규정을 주도해 만드는 것은 생명윤리를 심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는 "이 지침이 실행되면 가난한 사람이 집중적으로 진료 중단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의사협회 의료윤리지침 준비소위원회 이철 위원장은 "이번 지침은 죽음의 과정을 늘리지 않는 '존엄사(尊嚴死)'에 맞춰져 있다"면서 "의료윤리학자나 변호사·법학자 등과 충분히 토의해 최종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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