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사상 고취'조항 삭제 이북5도특별법 개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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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행정자치부 산하 이북5도 위원회(위원장 고순호)가 업무내용 중 '반공사상 고취' 등을 삭제하는 내용의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실향민들의 모임인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대표회장 장영철)가 이에 반발해 반대 서명운동에 착수하고 청와대.국회에 청원서를 내기로 하는 등 갈등을 빚고 있다.

20일 정부 당국자와 이북5도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는 "1962년 1월 만들어진 이북5도 특별법을 현실에 맞게 개선 보완하겠다"며 지난 6월 28일 이 법률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행자위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제4조 관장사무와 관련해 ▶반공사상의 고취 ▶이북에 대한 국시(國是)선전과 선무공작의 계획.실시 ▶남하 피난민에 대한 사상 선도 대목을 완전 삭제했다.

행자부는 이와 함께 서울 구기동의 통일회관(이북5도청사)을 도민회중앙연합회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미 체납돼 있는 임대비 26억원도 탕감해주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행자부는 도지사들의 모임인 이북5도위원회와 법 개정을 위한 협의를 거쳤다.

그러나 뒤늦게 이런 사실을 파악한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는 6일 열린 회의에서 "반공사상 고취 대목을 없애려는 것은 이북도민의 역할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입장을 정리했다. 연합회 측은 "이해 당사자인 이북도민의 여론수렴없이 일방적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평북 시장.군수단이 13일 차인태 평북지사와의 긴급간담회에서 "김정일 체제가 존재하는 한 반공정신은 지켜져야 한다"며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등 시.도별로 반대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연합회 측은 5도지사와 도민회장이 포함된 12인 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등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관례적으로 무상 사용해 온 통일회관에 거액의 체납임대료를 매겨 탕감 운운하는 정부의 처사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순호 이북5도위원장은 연합회가 발간하는 동화신문 15일자에 실린 기고에서 "반공사상 삭제를 이유로 특별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800만 도민의 바람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태도"라며 정면 비판하는 등 양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안응모 황해도민회장은 "김일성의 수령독재 체제에 쫓겨 고향을 등지고 온 실향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반공사상 삭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반발을 자초한 것"이라며 "정부와 이북5도위원회가 공청회 등을 통해 도민회중앙연합회와 함께 새로운 개정안 마련에 나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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