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노재현의 시시각각

항공의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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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랬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방은 6·25 때 격전지였던 곳이라 들과 산에 총알·철모 같은 전쟁의 흔적들이 흔했다. 불발탄을 주워 분해하려다 터지는 바람에 크게 다치는 사고도 가끔 일어났다. 미제 탄약통 뚜껑으로 만든 썰매는 얼음판 위에서 기가 막히는 성능을 발휘했다. 아이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는 상이군인들의 갈고리 팔을 보며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어른들이 하는 대로 ‘아이노코’라 부르며 놀리곤 했는데, 지금도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1920년대생인 나의 부모님에게 6·25는 생생한 현실 그 자체였다. 전쟁통에 북한에서 남쪽으로 탈출해 온 아버지, 흥남 철수를 겪은 어머니에게서 나는 직접체험 못지않게 6·25를 ‘현실’로 인식하며 자라났다. 주변에 널려 있던 전쟁의 흔적들은 그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나의 자식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들도 6·25를 현실감 있게 느낄까. 아닐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그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 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고 정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은 41.3%에 불과했다. 20대도 46.3%로 청소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성인은 63.7%).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켰다고 맞게 응답한 비율은 청소년이 63.7%, 성인은 79.6%였다. 청소년이나 20~30대에게 6·25를 생생한 현실로 인식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그리고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객관성을 빙자해 마치 남의 나라 전쟁인 양 다루거나 심지어 거꾸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발매되는 김정렬(1917~1992) 전 국무총리의 자서전 『항공(航空)의 경종(警鍾)』을 며칠 전 미리 구해 읽었다. 작고한 이듬해 비매품으로 500부만 찍었던 것을 수정·보완해 새로 펴낸 책이다. 김정렬에 대해 나는 대한민국 공군의 산파역이자 4·19 혁명 당시 계엄령 하 국방부 장관으로서 데모 군중을 향해 끝까지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훌륭한 군인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서전에서 정작 내가 감명받은 대목은 그가 1949년 4월 자비로 출판한 가상 전쟁보고서 『항공의 경종』이었다. 그는 북한의 전쟁 도발과 구체적인 방법을 정확히 예측하면서 “노예생활이냐? 영광의 독립이냐?”고 처절하게 묻고 있었다. 북한에 대해 “동족을 가상적국이라 함은 본의가 아니요, 그 누가 골육지쟁(骨肉之爭)을 좋아하겠는가마는 이북의 실권을 가진 자는 소위 소련의 괴뢰정권인 만큼 제1의 가상적국이라 아니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전 시 북한 전투기가 서울시내를 폭격하는 상황을 생생히 묘사하면서 공군력을 한시바삐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61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식은땀 나는 예언이요, 애국충정이다.

경종은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다. 우리가 6·25에 대한 현실감을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 일인 양 취급하고, 자라나는 세대를 올바로 교육하지 못하면 경종은 언제든 참화(慘禍)로 이어질 것이다. 천안함 피격 침몰은 엄청난 ‘해상(海上)의 경종’이었다. ‘육상(陸上)의 경종’도 충분히 가능한 사태다. 61년 전 울린 경고음. 지금도 유효하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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