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미친 짓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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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디어 헌터 (EBS 밤 10시)=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고뇌와 삶의 분열을 유장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린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감미로운 선율의 주제곡 '카바티나'도 영화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속 베트콩들이 미군에게 강요하는 '러시안 룰렛'게임은 베트콩의 실제 고문 방법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무용함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상징으로 쓰였다. 영화가 개봉된 뒤 각국에서 젊은이들이 이 게임을 흉내내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마이클(로버트 드니로)과 닉(크리스토퍼 워큰), 스티븐(존 새비지)은 철강공장 노동자다. 이들은 스티븐의 결혼식 직후 베트남으로 떠난다. 전쟁터에서 베트콩의 포로가 된 이들은 잔인한 고문을 받으면서 점차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스티븐은 점차 광기를 표출하게 되고 마이클과 닉은 그를 데리고 죽음의 러시안 룰렛 게임 도중 탈출에 성공한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마이클은 스티븐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닉이 베트남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상흔이 지워지지 않은 그 장소로 향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그야말로 환상적이다.'명배우'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드니로는 '디어 헌터'를 "이제껏 찍었던 영화 중 가장 육체적으로 소진됐던 작품"이라고 회고했을 만큼 열연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에 몰려 황폐해지는 인간성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촬영 기간 내내 쌀과 바나나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워큰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존 카잘·메릴 스트립 출연. 감독 마이클 치미노. 1978년작. 원제 Deer Hunter. ★★★★☆(만점 ★5개)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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